지선우보다 한 수 위가 되는 유일한 방법

'마음 이론'의 오류

by 나름이

현실에서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는 여자가 있을까? jtbc <부부의 세계>의 주인공 지선우의 이야기입니다. 외도도 모자라 이혼 과정에는 양육권 때문에 직장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결국 지역 유지의 딸과 결혼하고 사업까지 성공해 다시 돌아온 남자를 상대로 지선우는 열심히 싸웠습니다. 물론 주변의 헛소문과 편견에 맞서기도 했고요.



지선우1.jpg 출처 : JTBC <부부의 세계>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다는 드라마의 결론으로 찝찝해하는 시청자들이 많습니다만, 지선우가 대단한 여자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자신의 문제뿐 아니라 극 중 민현서, 여다경이 이상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까요. 이런 지선우보다 한 수 위가 되려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여기 지선우를 능가하는 한 여자와 그녀의 남편이 있습니다. 소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프랭크와 에이프릴입니다. 이들 역시 파리에서 보헤미안처럼 살기를 꿈꿨던 젊은 시절에 만나 처음 사랑에 빠졌습니다. 소설은 곧 중년의 현실에 맞닥뜨린 부부의 삶을 조명합니다.



661251_364961_4156.jpg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이태오 부부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괜찮은 가정입니다. 자녀가 둘이 있고 셋째를 임신했으며 고만고만한 수준의 교외로 이사한 상태입니다. 프랭크는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안정된 자리를 보장받았고 점심시간에 술을 많이 마실 수 있고 아내가 집을 지켜주는 평온한 일상에 안착한 상태죠. 하지만 에이프릴은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프랭크는 외도를 저지르고 맙니다.


다만 이태오와 다른 점은 스스로 외도 사실을 고백했다는 겁니다. 프랭크는 에이프릴과의 관계를 풀고 싶어서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에이프릴이 스스로 프랭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던 거죠. 일종의 질투 유발 작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순순히 프랭크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1_eurfu1LYrXVdKiMURLCDRA.jpeg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에이프릴은 묻습니다. "왜?" 그 여자와 잔 이유가 아니라 왜 굳이 그 사실을 털어놓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에이프릴은 프랭크의 일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러고 다니는 거 알아. 당신을 사랑한다면 신경이 쓰이겠지. 그런데 보다시피 아니야.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한 적조차 없어. 실은 나도 이번 주까지 내가 그런 줄 몰랐어.”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에이프릴이 지선우보다 한 수 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합니다. 지선우는 이태오에게 미움으로라도 반응했지만, 에이프릴은 아예 미움조차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부의 세계>처럼 복수극도 아닌 내용이
어떻게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될 수 있는 걸까요?



artworks-000545944377-qql6tv-t500x500.jpg 《이야기의 탄생》의 저자 윌 스토



《이야기의 탄생》의 저자 윌 스토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데 비범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우리의 뇌는 특정 생존 욕구에 맞게 조율이 되는데, 인간으로 구성된 환경을 통제하려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마음 이론’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며 어떤 모의를 하는지 그들이 앞에 없어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이 '마음 이론'의 오류로 인한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역시 에이프릴이 자신을 사랑할 거라 착각한 프랭크의 '마음 이론' 오류에서 갈등이 폭발한 것이죠.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는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20퍼센트만 정확히 판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친구와 연인 사이라면? 기껏해야 35퍼센트입니다. 타인의 생각을 읽을 때 발생하는 오류가 인간 드라마의 주된 원인이 될 수밖에 없겠습니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통제하려 할 때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잘못 예측하는 순간 불행히도 반목과 싸움과 오해가 싹터서 인간관계에 예기치 못한 변화의 파국적 소용돌이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이 즐겨 보았고, 보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 혹시 '마음 이론' 오류로 인한 갈등을 다룬 것은 없나요? 인물들의 갈등이 어디서 시작했는지, 그 원리를 찾다 보면 드라마·영화·소설의 재미를 두배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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