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이 부자가 되었다고요?

로빈슨 크루소의 부자되기 프로젝트

by 나름이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회에서의 치열한 삶을 끝내고 자연과 함께 조용히, 욕심 없이 살고 싶어서 산으로 들어간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자연밖에 없는 무인도에서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면 믿기십니까?



99c8e448183d486b97cdb11406963efa.jpg MBN <나는 자연인이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조난 당해 무인도에서 4년간 산 스코틀랜드의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의 실화에 영감을 받아 쓰인 작품입니다.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법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인데요.


무인도에서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었고, 그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로빈슨 크루소』를 함께 읽어 볼까요?



First-edition-of-Daniel-c_30_f_6_fp_tp.jpg 책 『로빈슨 크루소』



『로빈슨 크루소』의 원제를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길거든요.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것도 줄인 제목이고, 진짜 원제는 『조난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 강 하구 근처 무인도 해변에 표류해 스물 하고도 여덟 해 동안 홀로 살다가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들려주는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입니다.


『로빈슨 크루소』의 줄거리는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후 읽은 이야기는 조금 달리 보입니다. 로빈슨 크루소가 살던 시대는 중세가 지나고 슬슬 시민 의식이 깨어나던 시기였거든요. 유럽에서는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 의견서 이후 종교개혁이 속속 일어나 가톨릭 교회에 대항합니다.



201703060416564965_1.jpg 95개 조 의견서를 못 박는 마르틴 루터, 페르디난트 포웰스, 1872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유럽에는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등 여러 개신교가 등장하는데, 영국에서는 성공회가 나왔습니다. 성공회는 다른 개신교들과는 좀 다른 과정을 거쳐 생겨났습니다. 여섯 번 결혼한 왕 헨리 8세가 자신의 이혼을 문제 삼는 가톨릭교회의 간섭을 회피하고자 가톨릭 교회를 탈퇴해서 만든 종교거든요. 그러니 교회의 수장이 교황이 아니라 국왕인 것뿐 가톨릭과 다를 바 없었어요. 그래서 영국성공회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종교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 바로 청교도입니다.






『로빈슨 크루소』에는 이런 청교도 정신이 여실히 드러나는데요.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그 섬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청교도가 주장하는 논리와 일치합니다. 농사를 짓고, 사람이 오지 않는데도 요새를 만들고, 남은 식량은 창고를 만들어 비축하죠. 염소를 기르는 자신만의 목장도 있어요.



110.jpg 영화 <로빈슨 크루소>



사실 무인도로 오기 전까지 로빈슨 크루소는 이렇게 열심히 살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해석해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그 벌로 무인도에 오게 된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무인도에 와서는 그야말로 금욕적으로 생활하고, 규칙적이고 성실한 노동을 이어갑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생활을 잊지 않아요. 그러다가 프라이데이를 만나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같이 청교도적 생활을 하죠. 이런 노력의 결과가 결국 무인도 탈출로 이어집니다.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서 나올 때, 무인도는 사람이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워졌습니다. 모두 로빈슨이 28년 동안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섬을 가꾼 덕분이지요. 그리고 육지로 돌아온 로빈슨은 28년 전 맡겼던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해준 사람들 덕분에 부자가 됩니다. 충실한 청교도는 현실의 보상을 받아야 하니까요.



massachusetts-bay-colonists.jpg 미국으로 건너오는 청교도들



기존 가톨릭의 폐해에 반발해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프로테스탄티즘은 자본주의와 결합해서 부자가 되어야 할 당위를 제공해주는데요, 이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이 가톨릭을 누르고 전 세계적으로 퍼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청교도적인 생활을 하면 심지어 무인도 같은 곳에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화가 바로 『로빈슨 크루소』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생각은 미국 건국의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지요.


지금도 미국은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되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청교도의 나라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부자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건 이러한 전래를 거쳐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 그리고 신의 은총으로 부자가 된 것이기 때문에 그 돈을 어떻게 쓰든 그것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미국도 지금은 이런 종교적인 생각이 많이 희석되어 초창기 청교도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도 한 사회가 성립될 때 큰 역할을 했던 종교의 기본 개념과 사고의 방식은 언제나 그 사회에 배경으로 깔려 사람들의 세계관으로 작용하는 법이지요.




참고 도서 :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젊은 수도사들을 죽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