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과 <셜록>의 은밀한 관계
탐정 소설을 꼭 좋아하지 않더라도 '셜록 홈스'라는 인물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코난 도일이라는 의사 출신 소설가가 만든 캐릭터인데요. 『셜록 홈스』는 대중문화의 원형으로 수많은 작품에서 오마주 형태로 리메이크되고 있습니다.
BBC의 드라마 <SHERLOCK>를 비롯해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 일본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까지요.
『장미의 이름』은 중세 시대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의 기록자이자 멜크 수도원의 젊은 수련사 아드소는 한때 이단 조사관이었던 박식하고 명민한 프란체스코수도회의 윌리엄 수사와 함께 각지의 수도원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도착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그들은 아델모라는 젊은 수사의 죽음을 파헤쳐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번역가인 수도사 베난티오가 죽고, 보조 사서인 베렝가리오 역시 시체로 발견되죠. 장서관 사서들인 세베리노와 말라키아 역시 차례로 죽으면서 수도원의 살인 사건은 본격적으로 미궁에 빠집니다.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들이 다음 사건의 희생자가 되는 식으로 연쇄살인이 일어나며 추리소설의 공식에 충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요.
결국 윌리엄과 아드소는 사건의 열쇠는 장서관 속에 숨겨져 있는 서책과 관련 있다는 걸 알아냅니다. 그리고 장서관에 몰래 잠입해서 마침내 진실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범인은 이 서책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책을 씹어 먹어버리고, 장서관에 불을 질러 수도원은 불길에 휩싸입니다.
사실 이 소설에서 범인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처음부터 참 수상한 그 인물이 바로 범인이에요. 그런데 움베르토 에코는 이 소설이 추리소설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랐던 거 같아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범인이 아니라 살인의 동기에 초점이 맞춰지니까요. 도대체 범인은 왜 이런 연쇄살인을 저지른 것일까요?
범인은 책 한 권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 책이 대체 뭐길래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것일까요? 세기를 바꿀 대단한 비밀이라도 들어 있던 것일까요? 이 미지의 서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a』 2부에 해당하는 ‘희극’ 편입니다. 실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 유명한 ‘카타르시스(감정의 정화)’라는 말이 이 『시학』에서 나온 겁니다. 『장미의 이름』은 『시학』의 2부 희극 편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전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필사본을 둘러싼 비밀을 그립니다.
『시학』 2부 희극 편은 왜 수도사 몇 명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금서가 된 것일까요? 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14세기 초, 1327년은 종교적 독선과 편견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던 시기였습니다.
기독교 교리를 원리주의적으로 해석해서 웃음이 금지된 수도원에서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識者)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고 기술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희극 편은 신에게 대항하는 인간성의 상징이 됩니다. 인간의 세속적인 감정은 신의 율법을 침해하는 행위였지요. 교단의 젊은 수사들은 신의 율법 이전에 지식에 대한 갈구(이것 역시 인간성의 상징이죠)로 교단의 원칙주의자들이 엄격하게 금하는 이 책에 관심을 보이다가 죽임을 당한 거예요. 하지만 교단의 원칙주의자들 역시 이렇게 위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희극 편을 차마 없애지 못하고 위기에 몰려서야 불태워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 역시 지식에 대한 갈구와 존중을 했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장미의 이름』은 신이 지배하는 시기에 인간성에 대한 갈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움베르토 에코는 르네상스의 전조가 되는 시대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미의 이름』은 과학에 의해 종교가 위협받는 시기에 얼마나 폭력적이고 위험한 방법으로 기존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했는가, 그리고 당시의 종교인들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탐욕스러운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결국 이 수도원이 몇백 년간 지켜온 장서관과 함께 타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이 세우고 위선을 덧씌운 교회의 몰락을 상징합니다.
신의 지배를 벗어나기 시작한 인간들은 과학, 이성 같은 도구를 바탕으로 세계를 재정립하기 시작합니다. 신의 뜻이라는 마법의 주문보다는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와 탐구들로 세계관을 꾸려가는 것이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의 이성으로 주위를 탐색하고 사회를 재결성하는 시대가 열립니다.
참고 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