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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행복했을까?(9)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by 메멘토 모리

“아들아, 이 짐보따리 머리 위에 올려주렴” 들어보니 꽤나 무거웠다. 엄마는 그 짐을 머리에 이고 그 좁은 산길을 걸어가신다. 할머니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먼 거리였다.

어릴 적 엄마를 떠올리면 늘 머리에 무엇을 이고 있는 모습이 생각난다.

엄마는 농사를 짓던 시댁과 친정을 오가실 때 한 손에는 내 손을 잡고, 한 손은 늘 머리에 이고 있는 물건을 잡고 계셨다.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을 잡은 팔이 아프실 때는 오른손, 왼손 번갈아 가며 내 손을 잡아 주시곤 하셨다.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농산물이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 시골에서 수확한 호박, 오이, 고구마, 감자 등을 가지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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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둔치를 걷다 머리에 무엇을 이고 집으로 가시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 무거우면 들어줄까?” 했더니 엄마는 웃으시며 “안 무거워 친구와 놀다 오렴” 하고 다정하게 손을 흔들어 웃으시며 집으로 향하셨다. 그때 엄마의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머리에 무엇을 이고도 그렇게 환하게 웃어 주실 수 있는 엄마.



엄마는 이따금씩 나를 등에 업고, 고등어를 팔러 다니셨던 이야기를 하신다. “남형아, 너를 등에 업고, 고등어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했단다. 네가 내 등에서 꼼지락꼼지락 할 때마다 엄마는 즐겁고 행복했지. 네가 나를 보고 웃어 줄 때는 세상 모든 시름 다 사라졌단다. 엄마는 지금도 환하게 웃던 그때의 너를 기억해”

막냇동생을 등에 업고,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다시시던 엄마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등에 업힌 막냇동생을 힐긋힐긋 보시며 웃으셨던 엄마, 엄마는 우리 5남매를 그렇게 키우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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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아버지가 승용차를 사시면서 엄마는 무엇을 머리에 이는 그 수고로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다.


5년 전 엄마 허리치료를 위해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께서는 “젊었을 때 농사로 너무 무리하셨어요.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어르신 몸이 그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계신 것은 한평생 머리에 이고, 등에 업은 그 무거운 것들이 몸의 총량을 다 쓰게 한 것이다. 5년 전부터 허리를 펴지 못하시는 것도 결국 그 무거운 것들 때문이다. 그 무거운 것에는 우리 5남매도 포함될 것이다.


엄마 삶의 무게를 생각해 본다. 많이 무겁고, 버거웠을 것이다. 내가 감히 가늠하기 어려운 무게였다.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도, 그 누구에게 맡기지도 못하셨던 엄마


그 버거움 속에서도 엄마는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그 무거운 짐을 이고 내 손을 잡고 걸으면서도 나를 보며 웃어 주셨다. 아마, 나를 등에 업고 고등어를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도 웃으셨을 것이다. 내가 엄마를 존경하는 이유다.



“엄마, 나 등에 업고 다니실 때 좋으셨어요? 이제 머리에 이고 있던 짐들 내려놓으니 편하세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엄마는 힘이 장사고 억센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그 모든 힘을 우리 가족을 위해 쓰신 거잖아요? 너무 감사해요.”


엄마는 내가 등에 업혀 있을 때 아무리 무거운 것을 들어도 힘들지 않았다고 하셨다. 엄마는 나 때문에 행복하셨을 것이다.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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