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엄마가 버스를 2시간 기다리면서 부르신 동요 ‘섬집아기’다. 조부모님 집에서 농사를 돕고 시내로 나오다 버스를 놓쳐 정류장에서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가 나에게 불러주신 노래다.
아니, 나에게 불러주신다고 하셨지만 엄마는 기다림을 노래로 대신하였다. 달과 별이 선명하게 보였던 캄캄해진 승강장에서 엄마의 노래는 밤을 타고 주변으로 퍼졌다.
엄마는 무엇을 기다릴 때 늘 노래를 부르셨다. 밥을 하시면서 뜸을 들이는 시간에, 병원에서 엄마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엄마는 기다림의 절대강자였다. 아마, 평생을 기다리며 사셨던 것 같다.
매년 농사를 지으시며 풍년을 기다리셨고, 할아버지의 병환이 낫기를 기다리셨고, 맏며느리로 8번의 제사와 2번의 명절, 한식과 동지 차례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셨고, 실패와 이별로 아파한 내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다. 그것도 간절하게 기도하시면서...
아프셨던 시아버님을 모시는 동안 단 한 번도 불평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삼시 세 끼를 챙기시고,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을 늘 머리맡에 갖다 놓으셨다. 엄마는 늘 할아버지가 쾌유하시길 기다리셨다.
퇴직과 도전, 사랑과 이별로 엉망진창이 된 나를 묵묵히 기다리셨다. 엉망인 내 삶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추석명절에 찾아뵙지 못했던 날, 보름달을 보고 있던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남형아, 엄마는 늘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우리 남형이가 그 모든 아픔 이겨내고 다시 나아가길 기도한다. 다음 설 명절에는 꼭 보자꾸나.” 그 전화를 끊고 한참이나 울었던 것 같다.
병석에 누워계신 엄마는 늘 나에게 말씀하신다. “남형아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 거다. 그리고, 너의 마음을 다쳐서는 안 된다. 또 남을 아프게 해서도 안 된다. 엄마는 너의 착하고 예쁜 성품을 믿는다. 너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내 아들이다. 엄마는 늘 너를 믿는다.”
엄마에게서 배운 것 중 가장 큰 것이 기다림이다. 내 삶에 모토(motto)가 3가지인데 그 두 번째가 “큰 것을 얻으려면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이다.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다.
“엄마, 이따금씩 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2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셨던 엄마를 기억해. 노래를 부르시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엄마는 기다림을 노래하셨던 것 같아. 기다림은 힘이 들지만 즐겁기도 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