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은 노출되고 책임은 없다... 디지털 안전의 공백

아동 71.4% 온라인 욕설·폭력 노출, 62.3% 가짜정보 접해

by 이영일
900_IMG_20251218_183358_362.jpg ▲초록우산은 18일 국회를 찾아 더불어민주당 조인철 의원, 김우영 의원에게 아동의 온라인 안전을 위한 법안 개정 촉구 서명을 전달하고 있다. ⓒ 김우영 의원 블로그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이 최근 <클릭 후 우리가 겪는 진짜 이야기>를 발간했다. 이 책은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이 실제로 경험하는 위험과 권리 침해 실태를 담은 보고서로, 초록우산과 아동권리옹호단이 지난 20개월간 6차례의 워크숍을 거쳐 아동 504명의 목소리를 직접 수집해 정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아동의 71.4%(360명)는 온라인에서 욕설이나 폭력적인 장면을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실이 아닌 정보에 노출된 경험도 62.3%(314명)에 달했다. 반면 서비스 이용 약관을 꼼꼼히 읽는 아동은 21.4%(108명)에 그쳐,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이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초록우산 아동권리옹호단은 보고서를 통해 동 친화적인 쉬운 약관 제공, 연령 기반 필터링 강화, 온라인 그루밍으로부터의 보호, 아동의 AI리터러시 역량 교육 확대 등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국회로도 이어졌다. 지난 18일 아동 당사자들은 국회를 찾아 더불어민주당 조인철 의원과 김우영 의원에게 이 책과 함께 '아동이 안전한 디지털 환경 조성을 위한 법·제도 개선 촉구 서명'을 전달하고 발간회를 진행했다.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직접 알리기 위해서다.


디지털 환경이 아동에게 위험 요소를 동반한다는 경고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5월 OECD가 발간한 '디지털 시대 아동의 삶' 보고서 역시 디지털 기기가 학습·오락·정보 접근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스마트폰 과의, 유해 콘텐츠 노출, 사이버 괴롭힘 등 중대한 위험을 수반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과 딥페이크 범죄 등은 아동·청소년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지만, 가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나 플랫폼의 적극적인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IE003562617_STD.jpg ▲푸른나무재단과 초록우산, 조인철, 최형두 국회의원이 지난 7월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청소년 권리 보장을 위한 토론회’ 모습. ⓒ 푸른나무재단


지난 7월 8일 초록우산과 푸른나무재단, 조인철·최형두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한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청소년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공유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온라인 플랫폼의 대응 공백을 한목소리로 비판하며, 피해자 보호 기준의 미비와 해외 서버 기반 플랫폼에 대한 규제·기술 격차 문제를 주요 과제로 지적했다(관련 기사: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폭력 심해지는데 플랫폼은 '나 몰라라' https://omn.kr/2f9pa).


아동이 체감하는 온라인 범죄 위험은 수사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경찰청 사이버범죄 특별단속 자료에 따르면 2023년 9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검거된 사이버범죄 피의자 중 미성년자 비율은 35.4%(1,035명)에 달했다. 사이버범죄 가담자 10명 중 3명 이상이 아동·청소년이라는 점은 보호 대상인 아동이 동시에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여성가족부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현황'과 경찰청 범죄통계연보에 따르면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2019년 444명에서 2022년 1,175명으로 약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불법 촬영·유포, 합성물 제작, 온라인 그루밍 등 범죄 수법이 고도화되면서 아동·청소년이 주요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에 발간된 <클릭 후 우리가 겪는 진짜 이야기>는 제7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심의를 앞두고 작성된 아동보고서의 성격도 지닌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 국가는 5년마다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고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2019년 이후 제7차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의 인권과 인격을 온전히 존중해야 한다"며 아동 권리 보장과 보호 강화 정책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디지털 범죄 피해가 늘고 있다"며 "아동의 눈높이에 맞춘 디지털 환경을 조성해 아이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디지털 범죄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9년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심의 이후 아동 권리 보장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현장의 아동과 시민사회는 여전히 차별과 위험, 보호의 공백을 체감하고 있다. 아동권리단체들이 반복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의 대응은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아동이 디지털 환경에서 겪는 위험은 더 이상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책임이다. 플랫폼과 정부, 국회 가운데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대통령의 약속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져 아동에게 실질적인 변화로 전달될 수 있을지, 이제는 지켜볼 차례다.

https://omn.kr/2ggl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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