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역사전쟁…일본 교과서 왜곡은 왜 멈추지 않나
일본 고등학생이 2027년 신학기부터 사용할 새로운 사회과 교과서 상당수에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억지 주장이 담기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 등 가해 역사 서술도 희석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4일 교과서 검정 조사심의회 총회를 열어 2027년도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이 주로 사용할 교과서 심사 결과를 확정했다.
검정 대상 사회과 교과서는 일본사탐구 8종, 세계사탐구 7종, 정치·경제 5종, 윤리 4종, 지리탐구 3종, 지도 3종, 역사총합(종합) 1종이었다. 그중 27종이 검정을 통과하고 4종은 불합격했다.
새로운 고교 정치·경제, 지리탐구 교과서 대부분에는 4년 전 검정을 통과해 현재 사용되는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정부 견해가 실렸다.
일본 교과서 왜곡은 단순한 출판사 선택 문제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방침
제국서원이 검정을 신청한 지리탐구 교과서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는 1905년 (일본) 정부가 귀속을 내외에 선언해 국제법에 따라 시마네현에 편입한 일본 고유 영토"라며 "한국이 계속해서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니노미야서점은 지난해 검정 신청 당시 '우리의 지리총합(종합)' 교과서에서 독도와 관련해 기존에 없던 한국의 불법 점거 관련 기술을 넣어 주목받기도 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단순한 출판사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학습지도요령–해설서–검정제도라는 3단계를 통해 교과서 내용을 사실상 통제한다. 특히 2018년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은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로 명시하도록 방향을 제시하면서 이후 모든 교과서의 기준을 사실상 고정했다.
그 결과, 이번 검정을 통과한 정치·경제, 지리 교과서 대부분에는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 영토”라는 서술이 거의 동일하게 반복됐다. 일부 교과서는 한국을 ‘불법 점거’ 주체로 규정하며 표현 수위를 오히려 강화했다.
이처럼 정부 방침이 먼저 설정되고 교과서가 이를 ‘반영’하는 구조는 교육의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특정한 국가 서사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교도통신은 "지리·역사와 공민(公民)에서 영토, 근현대의 역사적 사상과 관련해 정부 견해에 기초한 기술을 요구한 검정 의견은 없었다. 정부 견해에 따른 기술이 (교과서에) 침투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반복되는 독도 왜곡, 일본 초중고 전반으로 확산...‘강제’의 삭제도 추진
독도 관련 서술은 고등학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동일한 논리가 강화되며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확고한 ‘국가 중심 서사’를 접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영토 분쟁 교육을 넘어 국제법적·역사적 쟁점을 균형 있게 이해할 기회를 차단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사안을 단일한 국가 입장으로 고정시키는 것은 교육이라기보다 ‘정치적 메시지 전달’에 가깝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거사 서술의 변화다. 강제동원과 관련해 기존 교과서에 남아 있던 ‘강제성’ 표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예컨대 “강제노동” 대신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표현으로 바뀌면서 행위의 본질이 흐려졌다.
또 일본 정부는 2021년 국회 답변을 통해 ‘강제연행’이라는 용어 대신 ‘징용’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 결정 이후 교과서에서도 ‘연행’이라는 표현이 사라지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는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책임의 축소로 이어진다. 강제성을 제거한 서술은 가해 사실을 ‘불가피한 상황’이나 ‘환경적 문제’로 전환시키며, 결과적으로 역사 인식을 왜곡하는 효과를 낳는다.
일본 교과서 왜곡의 핵심 문제는 단순한 사실 오류가 아니라 역사를 국가 정체성 형성 도구로 활용하는 것
이번 검정에서 극우 성향 출판사인 레이와서적의 교과서가 불합격 처리된 점은 눈에 띈다. 해당 교과서는 위안부 강제성을 부정하고 “자발적 노동”이라는 주장을 담아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는 일본 교과서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요소일 수 있다. 노골적인 극우 서술은 걸러내면서도 정부 방침에 따른 ‘완화된 왜곡’은 대부분 통과시키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극단은 배제하되 기본 방향은 그대로 유지하는 ‘관리된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교과서 왜곡의 핵심 문제는 단순한 사실 오류가 아니라 역사를 국가 정체성 형성 도구로 활용하는 방식에 있다. 특정한 역사 인식을 학생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비판적 성찰보다 국가 중심의 서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작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피해국의 역사 경험은 축소되거나 왜곡되고 국제 사회에서 합의된 역사적 평가와도 괴리가 발생한다. 결국 이는 한일 간 갈등을 장기화시키는 요인이자 미래 세대 간 인식 차이를 더욱 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왜곡, 끊어내야 한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는 수십 년간 반복돼온 외교 갈등의 단골 소재다. 그러나 이번 사례가 보여주듯 그 양상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노골적 부정에서 표현의 완화로, 극단적 주장 대신 제도화된 서술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경우 일본 사회 내부에서조차 다양한 역사 인식이 설 자리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이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될수록 비판적 사고와 역사적 책임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일본 교과서 문제의 핵심은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각을 허용하느냐’에 있다. 지금과 같은 구조가 유지되는 한 역사 왜곡 논란은 형태만 바꾼 채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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