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없이 추모객 발길 이어져···국화꽃과 손편지로 뒤덮인 공간
매서운 바람에 가슴마저 움츠러드는 4일 오후 이태원역 1번 출구.
희생자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갑자기 찾아온 추위도 막지 못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과 청소년, 그리고 가장 많은 죽음을 당한 20~30대의 방문이 가장 많아 보였다.
스님의 극락왕생 독경소리가 잔잔히 이태원역 1번 출구를 휘돌아 감쌌다. 참사 현장에서 고작 30m 떨어진 이곳에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과 소주, 손편지, 귤, 담배 등이 더욱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화로 조성된 추모공간에는 기자가 지켜본 3~4시간 동안 시민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졌다. 청소년과 청년, 할아버지와 주부, 외국인들까지 추모 대열에 함께 했다.
역사 입구 바로 앞에는 작은 테이블이 놓였고 여기에는 추모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적을 수 있는 포스트잇이 비치돼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청소년, 청년들은 물론이거니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곳에 서서 무언가를 적는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기 충분했다.
사고 현장인 해밀턴 호텔 옆 골목은 TV로 본 것보다 더 좁아 보였다. 4미터라고는 하지만 체감하기로는 폭이 더 좁아 보이는 골목은 아직도 경찰 통제로 들어가지 못했다. 골목 곳곳에 놓였던 주인 잃은 물건들은 대부분 다 치워진 상태다. 지나던 시민들의 일부는 발걸음을 멈추고 이곳을 한참 바라봤다.
참사 현장 골목과 이태원역 1번출구 부근의 가게들은 대부분 휴업에 들어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모두 자발적 휴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화꽃을 준비해 온 사람들은 차마 이 꽃조차 놓지 못하고 한참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수녀님들도 이곳에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서울시교육청 학부모지원센터장이라고 소개한 박미향씨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라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씨는 “교육청에도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지만 희생자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어 이곳을 찾았는데 참사 현장인 골목이 생각보다 좁아 보여 더 마음이 아프다”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관악구 낙성대에 사는 임길주(67)씨는 “저도 31세, 32세 딸이 둘 있는데 이번 희생자들이 대부분 딸 또래라 하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이곳에 오게 됐다”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임씨는 커다란 백장미를 희생자 추모공간에 고이 놓았다. 무릎을 꿇고 한참이나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린 임씨의 어깨는 들썩였다.
일산에서 왔다는 한 주부는 기자의 질문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 세월호 때도 안산에 갔었지만 이런 일이 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집에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고 너무 화가 나서 오게 됐다”며 한숨을 크게 내 쉬었다.
“다 처벌 받아야 합니다. 관련 책임자들 다 처벌 받아야 합니다. 대통령부터 처벌 받아야 합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린 이 주부는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이태원역 1번 출구에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추모객들도 줄을 이었다.
동작구에 사는 30대 초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 모씨는 “희생자들 나이가 제 여동생 나이와 비슷해서 너무 끔찍하고 마음이 아팠다. 동생 또래 나이대 희생자들이 많았는데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시간을 내서 꽃 한송이 들고 오게 됐다”라며 울먹거렸다.
참사 당일 10시경 이태원역 부근에 있었다는 24세 박 모양은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울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부터 쏟아냈다. “제가 그날 이곳에 있었는데 나만 살아남은 것 같아 희생자들에게 너무 죄송해서 오게 됐다”며 “그렇게 인파가 많았는데도 경찰이 없었다는게 너무 말이 안된다”며 주변에 경찰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며 분통을 자아냈다.
21세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두 여대생은 “저희들이 10대일 때도 세월호 사건을 겪었는데 20대가 돼서 또 또래들이 많이 죽어 너무 안타깝다”며 흐느껴 울었다. 기자도 눈물이 터져 이 여대생의 등을 두드리며 한참이나 서로를 위로했다.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고개를 떨구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현장에 비치된 포스트잇에 영어로 무엇인가를 써 내려가는 모습도 보였다. 한 외국인 여성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했다.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와 있다는 미국인 소피아(25)씨는 “그날 나도 이태원에 올 예정이었는데 다른 일이 생겨 오지 않았다”며 “나도 이런 사고를 당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 올 수밖에 없었다”며 흐느꼈다. 소피아 양은 내일도 이곳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 실랑이도 있었다. 분을 참지 못한 일부 시민이 소리를 지르며 “대통령이 사과해라. 행안부장관 파면해야 한다. 경찰은 도대체 뭐하고 있었냐”며 소동도 벌어졌다.
한 켠에선 “20대들이 너무 생각이 없다. 머리에 뭐가 들은 거냐”며 소리를 질러 주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경찰이 없었으면 폭력사태까지 벌어질 분위기도 연출됐다.
기자가 현장을 떠나는 저녁 6시에는 추모 인파가 더 몰려 들었다. 매서워진 날씨와 달리 이태원역은 추모 열기로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