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8일. 인천에 사는 30대 청년이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그의 유서에는 '정부 대책에 실망했고 나의 죽음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의 죽음 이후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연이어 3명이 계속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천 미추홀구를 대상으로 수백억 원대 전세사기를 벌인 속칭 '건축왕' 남헌기 일당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이후 신변을 비관한 죽음이었다.
이후 전세사기 문제는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다. 안타까운 죽음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까지 희생자만 8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이를 '경제적 살인'이라 말한다.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2주기 맞아 주택 세입자 발언대회 열려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나온 지 2년에 즈음한 2월 22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월대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주최로 '첫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2주기, 주택 세입자 발언대회'가 열렸다.
발언대회에는 전세사기 피해자 및 세입자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전세사기 문제가 한국 임대차 제도의 구조적 결함으로부터 시작됐고 윤석열 정부가 이를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여는 발언을 통해 "재난이 돼 버린 전세사기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더 이상 좌절하는 피해자가 없도록 바꾸어야 한다"라며 "우리 모두 관심 갖고 목소리를 높이고 감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년·사회초년생 표적... 국가는 당장 나서 특별법 연장·개정하라"
수원에서 500명 넘는 임차인에게 수백억 원대 피해를 안긴 임대업자 정씨 사건의 피해자 이하은씨는 "저는 어린 시절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20대 내내 생활비를 벌며 어렵게 살면서 30대가 돼 마지막으로 전세집을 얻었지만 그 집은 전세사기의 덫이었다. 지금 내집 마련은 커녕 억대의 빚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며 5월에 만료되는 특별법 연장과 실질적인 주거 및 금융 지원 대책, 가해자에 대한 더욱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서울 동작구 전세사기 피해자라고 밝힌 강다영씨는 "사회초년생으로서 열심히 일하며 한푼두푼 모은 돈을 전세 보증금으로 넣었다. 부족한 금액은 중소기업청년 대출을 받아 채우며 어렵게 마련한 내 보금자리였지만 지난 1월, 임대인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파산해버렸고 저는 전 재산을 잃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씨는 "전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기가 벌어지고 있고 특히 청년과 사회초년생, 정보 취약계층이 표적이 되고 있다"라며 "국가가 지금 당장 나서 특별법을 연장하고 개정해 피해자 구제를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이 나라는 상식과 정의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 피해자들의 절규
세입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자신을 공공임대주택에 살다가 민간임대주택으로 이사온지 1년이 조금 안 된 세입자라고 밝힌 졔졔씨는 "윤석열 정부 들어 부담 가능한 가격의 공공임대주택은 거의 없고 비싼 역세권 청년주택이 즐비했다. 결국 전세대출이 되는 민간임대를 몇개월동안 발품을 팔아 들어가게 됐다"라며 "공공임대에서 민간임대로 시선을 돌린 순간 전세사기가 판을 쳤고 임대인은 하자 보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파면하고 우리의 삶을, 우리의 집을 지켜내자"라고 호소했다.
한편, 지난 20일 인천지법 형사 14부에서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2차 기소사건 1심 선고가 있었다. 전세사기로는 최초로 범죄단체조직죄로 기소돼 재판받던 남씨일당의 사건이었는데 재판부는 주범인 남헌기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지만 공범 30명에게는 범죄단체조직죄 무죄, 공인중개사법 무죄, 사기 무죄로 무더기 집행유예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박순남씨는 이 판결에 대해 "윤석열도, 국민의힘도 외면한 전세사기피해자들인데 이젠 사법부마저 가해자들의 편을 들어줬다. 피해자인 우리가 얼마나 더 절규해야 하나. 이 나라는 상식과 정의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