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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공병문고

집중치료실

by 느곰씨 오만가치

소아병동에는 '중환자실'이라는 이름을 쓰질 않았다(요즘 전부 바뀐건지는 모르겠다). '집중치료실'이라는 이름은 '중환자실'이라는 이름보다는 위압감이 덜 했다. 더 쉽고 빠르게 약물 투여와 수혈이 가능했다. 아이와 벽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 해서 그런지 묘한 불안감과 안정감이 공존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의료진에 맡기고 떠날 수는 없었다. 아내와 집중치료실 앞에 앉아 얘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오고가는 의사, 간호사들에게 어떤지 물어 볼 수 있어서 였다.


아들을 보고 나온 아내는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내 무릎을 배고 깊은 잠에 들었다. 지나가던 담당 교수님도 손바닥을 보이며 깨우지 말라는 동작을 했다. 나는 목을 조금 기울려 답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고비는 넘긴 듯 했다.


응급실에서 찍은 CT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출근 후 확인했다. 예상했듯 소장 쪽에서 출혈이 있었다. 어린이 병동의 노 교수님이 영상의학과에 응급으로 요청해 주신 것이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이의 상태가 조금 나아진 후로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교수님들은 외래 진료를 가셔야 했고 집중 치료실은 그다지 분주해 보이지 않았다.


"집에 다녀올까? 좀 씻기도 하고"


아내와 잠시 집에 다녀 오기로 했다. 학원 선생님과의 전화 면담도 있었고 둘다 밤을 새워 피곤한 상태였다. 집을 지키던 딸을 안아준 뒤 거실에 쓰러져 잠들었다. 아내가 깨우는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쟈기, 전화 안왔었어?"


전화기를 보니 부재 중 통화가 있다. 아들이 혈변이 계속 되 혈관조영술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와달라고 했다. 우리는 '혈변'이라는 단어에 놀라 병원으로 급히 달려갔다. 담당 교수님은 바쁘신지 노교수님이 와 계셨다.


영상의학과 교수님이 조영술은 잘못하면 시술부 주위 괴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치료할 수 있으면 그냥 치료를 진행하자고 했다. 출혈의 원인도 결국 크론이라 시술해도 원인이 해결되는 건 아니니 면역억제제를 쓰자고도 하셨다.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 상황이라 비급여이기도 했고 병원 측에서도 불이익이 있지만 써야 할 상황이라며 진행하자고 하셨다. 지원 문제는 교수님들이 해결하시겠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약을 잘 안 쓰려고 한다고 한다. 병원 지원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해 주시는 교수님들을 만난 것이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던 것 같다.


혈변이라는 말에 아내는 다시 걱정이 태산이다. 혈변을 보았지만 혈압과 다른 수치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걱정이 되었는지 우리는 다시 집중치료실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최대한 함께 있다고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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