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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May 19. 2023

글먹, 글로소득을 꿈꾸며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 선생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에 나오시질 못했다. 자습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열리며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들어온다. 교장 선생님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다가 자신의 삶을 글로 적어 보자고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글 쓰는 걸 어렵게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접한 중2병의 허세인지 모르겠지만 할 얘기가 많았던 나는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1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만'이라고 외쳤다.

"5줄보다 적게 쓴 사람. 손"

대부분의 친구들이 손을 들었다.

"10줄보다 적게 쓴 사람. 손"

나머지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10줄 이상 쓴 사람. 손"

나는 홀로 손을 들고 있었고 친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신세가 되었다. 주목받는 거 좋아하지 않는데 본의 아니게 주목받게 되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의 눈빛을 보니 순간 불안감이 밀려왔다.

"자, 그럼. 가장 많이 쓴 친구 글을 한번 들어볼까?"

'헉. 그럼 그렇지.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조심스레 읽어 내려갔다. 반쯤 읽을 무렵 종이 쳤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시킨다고 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부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 어김없이 '내 이름으로 된 책 쓰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을 쓸지는 몰랐지만 내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 중에 가장 쉬운 게 책 쓰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는 도중에 한번 글을 써볼까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뭔가를 얘기할 만한 위치도 아닌 듯했고 아직은 밥벌이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독서도 그랬다. 전문 서적 위주로 구매를 했고 또 공부했다. 인문학이 밥벌이에 도움이 된다지만 공돌이에게는 기술 그 자체가 전부였다. 얼마나 빨리 새로운 기술을 익혀 현장에 적용하느냐의 문제가 훨씬 중요했다. 문학 독서라는 것은 마음이 차가워질 때, 세상에 부딪쳐 굳어져 갈 때, 그런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싶을 때 가끔 하는 것이었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보디 빌더에게는 중량 치는 게 더 중요한 일이고 공돌이에게는 기술 공부가 훨씬 중요했다.

중간 관리자의 위치에 올라섰을 때 리더십 관련 책을 읽었고 경영에 관한 공부도 했던 것 같다. 기술자에서 관리자로 변신하려니 여러 가지 기법들이 필요했다. 그때 역시 문학은 멀리 있었다. 밥벌이와 문학은 여전히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였다. 독서보다는 학습이 더 필요했고 수많은 문학 서적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기술 서적이 살아가는 데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팀장을 내려두고 생긴 시간은 앞으로의 시간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실용서만 읽어 나가는 나에게 쥐어진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무려 40년 전도 전에 지금의 일을 정확하게 짚었다. 책에 줄을 긋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나에게 줄을 긋게 만들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덮는다는 것이 얼마나 예의 없음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독후감을 쓰기를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이 쌓이자 광고를 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로 먹고사는 인생의 첫 발걸음이었다. 블로그에서 글만 쓰다가 페이스북 '독서클럽'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책을 정말 다양하고 진지하게 읽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인스타그램은 라이트 했지만 즐거움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사실 판타지를 좋아하고 무협을 재미나게 읽는다. 그럼에도 잘 읽지 않었던 것은 수익구조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웹소설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장르지만 알량한 지식으로 덤비기엔 부족한 게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읽는 독서가 시작되었다.

사실 짧은 시간에 효과를 보기란 쉽지 않은 독서법이다. 주제를 정하고 관련된 도서를 깊이 있게 파고들면 빠르게 해당 영역을 접수할 수 있다. 편집해서 다시 책으로 낼 수도 있을 듯했다. 그래도 나는 나 나름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무작위로 읽고 있다. 아직은 두루 접해 보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영역의 책만 읽어서는 생각도 스타일도 좁은 범위로 굳어져 버릴 것 같기 때문이었다. 추천사도 서평도 잘 읽지 않는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느낌 가는 대로 혹은 책 속에서 보였던 책이라서 구매해서 읽는다. 이 세계에서는 너무 좁은 지식을 가진 나는 뭐라도 알아들으려면 이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나오는 17번 공원의 첫 번째 벤치에 앉아서 매일 같이 '실용 백과사전'만 읽는 자치회장 아들은 '소설을 쓰기로 했다면 소설가다'라고 말했다. 사실 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했다고 작가로 불리는 것이 조금 낯뜨거웠다. 처음에는 '작가 지망생이죠'라고 말했지만 브런치 작가 등단에 실패하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냥 작가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포지션을 설정해야 더욱 노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을 내기 전까지는 영원한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을 들었다. 졸작이든 졸필이든 한 권의 책을 마무리 해보다는 경험은 중요하다. 그것은 비단 글쓰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생의 모든 일은 마침표를 찍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장이라는 세계>를 열심히 적었다.

사실 에세이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니 사람들이 왜 에세이부터 쓰는지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려면 플롯, 서사, 캐릭터 등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에세이에서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그저 글로 엮으면 된다. 글쓰기 연습을 하기엔 에세이만 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에세이를 쓴다는 것에 그렇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누군가 읽어달라고 쓰는 걸이라기보다는 나만을 위한 글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만을 위한 글로 연습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했다.


이 글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30화로 이뤄진 브런치 북 한 권을 엮었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갈 것이고 이제는 글 쓰는 사람의 마음을 다시 글로 엮어도 되겠다는 나의 허락을 받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고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또 이렇게 글로 남길 것이다. 삶이 글이 되는 인생은 어떤 것인지 너무 궁금하고 그것으로 남은 인생의 부에도 영향을 받는다면 그 또한 큰 기쁨이 될 것 같다.


나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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