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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May 24. 2023

인공호흡

마취사고를 피해 소중한 생명을 살려낸 이야기


또 한 번의 의료사고가 나를 비켜갔다. 천운으로...


환자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내 누님 같고 엄마 같은 여인이었다. 50대 중반의 수더분한 아주머니였었는데 1년 전, 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경운기에서 떨어져 오른쪽 팔꿈치의 상완골이란 뼈가 부러져 전신마취로 철심을 박는, 작지 않은 수술을 받았다. 순박한 심성 그대로 물리치료등의 후속치료에 잘 따라주어 후유증 없이 골유합이 잘 되었다.


수술 후 1년여에 철심인 금속판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입원하였다. 1차 수술과는 달리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기에 초빙된 마취과 전문의는 전신마취보다는 팔만 마취하는 방법으로 결정하였다.


어깨와 목사이에 있는 상완 신경총에 국소 마취제를 주사하여 팔만 마취하게 하여 전신마취의 위험과 후유증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사실 마취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인류 질병의 역사에서 외과의학의 발전은 마취학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리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마취의 역사에서 현대 마취학은 눈부시게 발전을 하였지만 아직도 마취사고는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번은 수술 중에 동맥혈이 갑자기 선홍색에서 진홍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취과 의사에게 체크해 보니 기도에 삽입된 튜브의 연결이 끊어져 산소공급이 안되고 있던 것이었다! 부랴부랴 다시 연결하고 환자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빨리 발견되어 무사히 넘어갔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이날도 팔의 부분마취가 불완전하였던지 수술 중에 환자의 불편함이 많은 것 같아 신경안정제인 발리움을 많이 사용하였다.


수술이 끝나고 환자도 깨어났다. 초빙된 마취과 의사도 돌아가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런데 갑자기 환자가 울기 시작하였다.


" 엉, 어흥, 어어흥! "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러면서 남편에 대한 원망과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 이놈아! 네놈 때문에... 흑, 흑 "


그렇게 심성이 부드럽고 순박한 여인이 평생 남편으로부터 갖은 구박과 구타를 당해온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이 신경안정제의 약기운으로 무의식에서 분노가 일어나 그동안 쌓인 원한을 통곡과 함께 풀어 나오는 듯했다.


한참을 그러다 울음이 뚝 끝나며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이었다! 뺨을 때려도, 살을 꼬집어도 숨을 쉬지 않았다. 점점 청색증이 시작되고 돌연 수술실이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급기야 환자의 코를 잡고 입술에다가 숨을 불어넣어도 보았다. 그야말로 마우스 투 마우스 인공호흡을 하여 보아도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초조하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고 3분, 아니 늦어도 5분 이내 살려내지 못하면 개업 후 의료사고가 현실이 되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마취의사도 먼저 가버렸고 나 혼자 이 환자를 살려야 한다. 그 순간에도 앞으로 일어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사망, 식물인간, 소송, 배상문제...

심지어 환자가 사망해도 내 병원에서 끝까지 가야겠다는 생각까지도...


초조한 마음이 극에 달해 포기할 즈음 경험 많은 수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라링고스코프'라는 기도 삽관을 위해 턱을 올려주는 기계였다. 그것을 턱을 들고 혀를 밀어 기도를 벌려주니 그제야 " 파! " 하고 숨을 쉬는 것이 아닌가!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반가운 소리였다. 마취기운으로 울다가 혀가 뒤로 말려들어가 기도를 막은 것이었다. 그때 마취과의사도 들이닥쳤다. 돌아가다가 다시 전화를 받고 급히 도착했다. 이미 상황은 종료되고 환자가 숨을 계속 잘 쉬도록 깨웠다.


이래저래 두 의사가 큰 일을 당할 뻔한 위험을 넘기는 순간이었다. 정말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의 순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환자에게도 원망이 갔고 그 순박한 여인을 평생 구타해 온 남편에게도 원망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란 작자는 아내와 같이 병원을 같이 온 적도 없고 아내의 수술에 걱정도 해 주지 않은 무심한 남자였다. 사실 팔이 부러진 것도 남편의 구타에 의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갔다.


다음날 환자상태는 아무 이상도 없었고 본인은 기억하지도 못하였다. 정말 조상님과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료사고가 무사히 비켜 넘어갔다.


3년 후에야 그날의 일을 말하고 나와 서로 키스한 사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농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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