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 맘 Mar 16. 2021

층간소음 문제는 무조건이야!

고마운 아랫집 사람들




  사회적 이슈로도 많이 등장하는 층간소음을 우리 집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갓난아기 때는 별로 크게 와 닿지 않다가  무렵 걷기 시작하면서 층간소음 문제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돌 전까지는 놀이매트를 아이가 넘어져서 다치지 않기 위해 깔았다면 돌 이후로는 층간소음 문제로 더 두꺼운 놀이매트를 폭풍 검색해 찾아야 했다. 우리 집에 거쳐간 매트들도 지금 생각해보니 참 많은 것 같다. 커다란 대형 상자에 이런저런 매트들이 수시로 배달되곤 했으니 말이다. 한 번에 잘 선택하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어야 했다. 매트 가격은 왜 이렇게 비싼 건지. 그래도 그 돈을 써서라도 층간소음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오.


  아이를 이렇게 세 명이나 낳을 거면 처음부터 1층에 터를 잡는 건데 아쉬움이 남았다. 이사를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뛰지 마라!" 소리 하는 것도 지치고 아랫집에 너무 죄송해서라도 1층으로 이사하고 싶은 생각이 늘 마음속 한구석에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할머니를 볼 때면 인사를 90도로 하며


  "아이들이 많이 시끄럽죠? 우는소리도 많이 들리고. 뛰기도 많이 뛰고. 죄송합니다. 제가 더 주의시키겠습니다."


할머니는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나도 손주 어릴 때 겪어봤어. 새댁. 그때  우리 아랫집 사람은 우리 손주가 뛰니까 쫒아 올라와서 손주 다리몽둥이를 확 부러뜨린다고까지 말했어. 내가 그때 생각하면 참... (쯧쯧) 애들 그만할 때는 뛰는 게 정상이지. 신나게 뛰라고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날뻔했다. 항상 죄송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애들한테 뛰지 말라고 소리만 버럭버럭 질렀었는데. 물론 아랫집 할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우리 애들을 맘껏 뛰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그 말씀이 어찌나 고맙던지.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할머니를 만날 때면 꼭 인사를 90도로 정중하게 하라고 교육시켰다. 너희들이 뛸 때 시끄러운데도 다 참고 괜찮다고 말씀하신 분이라고. 참 고마운 분이시라고. 아이들이 백 프로 다 알아듣진 못해도 내가 아랫집 할머니를 고마워하는 이 마음은 전달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 뒤로 나는 아랫집 할머니께 과일, 쌀, 고기 등 선물을 종종 드렸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하시며 웃는 얼굴에 손바닥을 뻗으시며 선물 받을 준비를 하시는 아랫집 할머니를 보니 너무 귀엽기도 하고 꼭 우리 할머니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집에서 4년을 살았다. 어쩔 수 없이 남편 직장문제로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 왔지만 지금도 

아랫집 할머니가 생각난다.


  나는 이번에 이사하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렇게 층간소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가 1층도 아닌 25층 꼭대기 층을 계약한 것이다. 그때 뭐에 홀렸었나. 남편 없이 나 혼자 집을 봤었는데 유독 집이 환하고 집 앞에 산도 있어 경치가 너무 좋아 홀딱 반해버렸나 보다. 그렇게 홀딱 반해 계약하고 집에 온 날. 나는 잠을 잘 못 자고 뒤척였다.

  '층간소음은 어떡하지? 꼭대기 층이라 아이들이 위험하진 않을까? 엘리베이터 많이 기다려야 하는 거 아냐?'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오만가지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오죽하면 '계약을 취소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새로 이사하는 집 아래층 사람이 제발 예민하지 않길 기도하는 수밖에.


  아직 아래층 사람들이 누구인지 성향도 모르기에 최대한 두꺼운 매트를 새로 구입해 거실에 깔고 전에 있었던 매트들은 온 방에 다 깔았다. 전에 집보다 좀 더 작은 평수로 이사했기에 이 정도로 끝낼 수 있었단 생각에 작은집으로 이사한다며 불평했던 게 조금 수그러들었다.


  이사한 다음날 나는 비싸서 잘 사 먹지도 않는 최고급 샤인 머스킷 포도와 멜론을 한가득 상자에 담아 예쁘게 포장까지 해서 아랫집으로 찾아갔다. 왜 이렇게 떨리는지 미리 인사말까지 연습하며 면접장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아랫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네에. 위층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에요."

  "잠시만요."


내 또래의 여자가 문 밖으로 나왔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선물부터 들이밀며


  "저희 어제 새로 이사 왔는데 많이 시끄러웠죠? 죄송해요. 저희 아이가 셋이라서 좀 시끄러웠을 거예요. 미안한 마음에 선물 좀 드리려고요."


  "안 주셔도 되는데  정말이에요."


그때 나는 둘째 아들과 같이 인사를 갔었는데 아랫집 여자는 우리 아들을 보며 아이 키에 맞게 자세까지 낮추더니


  "아유. 잘생겼네. 몇 살이야? 이모 조카도 너랑 비슷한 또랜데."


아랫집 여자는 자기도 조카가 이 또랜데 조카 생각이 난다며 아이들은 뛰면서 크는 거라고 맘껏 뛰라고 말해주었다.


  "남편이랑 주말부부라 평일에는 저밖에 없어요. 괜찮아요. 맘껏 뛰어도 돼요. 그리고 선물 같은 거 하지 마세요."


  나는 그렇게 또 새로운 아랫집 은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뒤로 설 명절을 맞아 옛날 과자 선물을 준비해서 또 찾아갔다. 마침 주말부부라던 남편도 왔는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안녕하세요. 항상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명절 잘 보내시라고. 큰 거 아니니까 받으세요."

말하고 나는 얼른 계단으로 올라왔다.


  2시간쯤 지났을까? 누구 올 사람이 없는데 초인종이 울리는 것이었다. 누구지? 하며 인터폰 화면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아이 있는 집이면 누구나 아래층 사람들이 그렇게 초인종을 누른다면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마음의 각오를 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래층 부부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항상 받기만 해서 미안해서요. 아이들 케이크 좋아할 것 같아서 사 왔어요.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신나게 뛰어놀아도 되니까 애들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이런! 감동의 물결이 파도치듯 밀려왔다. 현관문을 닫은 후에도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따뜻한 세상이야.'


  아직도 그때의 감동이 남아있지만 그 감동만큼 아래층에 보답을 못하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 주체할 수 없는 움직임을 가진 우리 삼 남매를 어찌 감당해야 할까. 난 아직도 1층이나 단독주택에 여건이 된다면 이사 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배려심 많은 아랫집 사람들을 만나 다행이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난 그 뒤로 아파트 층간소음은 꼭 위층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우리 옆집과 아랫집의 옆집까지 찾아가 죄송하다며 인사해야 했다.


* 커버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작가의 이전글 학교에 가기 싫다는 딸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