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는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적합할까? 결론은 과마다 다르다. 하지만 경험상 내향적인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하루종일 수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으며 웬만한 잡담도 금지하고 수술 필드에 집중해야 하니
사람들과 말도 많이 하고, 많이 움직여야 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은 아무래도 적은 것 같다. 본래의 타고난 성격은 어찌하리오. 수술실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면 거기에 맞출 수밖에.
의료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할 말만 딱 끊어서 정 없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바쁜 업무에 치이고 가슴 아픈 일들도 많이 경험하기에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기제로 되도록 감성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데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다.나 또한 그런 게 익숙해져서 요즘 많이들 말하는 MBTI상 T다!
대학시절 나의 단짝도 호흡기 내과 병동에서 숱한 환자들의 죽음을 마주하며 나중에는 슬픔보다는 그냥 일 적으로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감정이입이 많이 되면 며칠, 몇 주 동안 그 슬픔을 씻어내느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수술실이라는 특수한 근무부서여서 환자들의 죽어가는 과정을 제대로 본 적은 없으나 뇌사자들의 장기이식 수술 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경우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나 사람이 죽는다는 건 같은 거니까.
환자는 뇌사상태로 수술실에 들어온다. 수술 준비를 하는 모든 의료진들의 마음도 무겁고, 수술실 안 공기도 무겁게 느껴진다. 처음 시작하기 전 뇌사자의 명복을 비는 의미로 묵념을 하며 시작한다. 묵념이 끝나면 수술시작을 알리고 장기 적출을 시작한다. 뇌사자의 상태에 따라 여러 장기가 적출되기도 하고 하나의 장기만 적출하는 경우도 있다. 뇌사자의 장기를 받을 수여자는 전국에 순번이 정해져 있어서 그때그때 뇌사자의 장기를 가지러 오는 병원들이 다르다. 만약 제주대병원에서 수술을 해도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장기를 가지러 가는 경우도 있고, 부산에서 수술을 하는데 서울에서 가지러 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앰뷸런스, ktx, 비행기, 헬기 등 교통수단을 총 동원해서 최적의 시간을 맞춘다.죽어가는 사람은 말도 없고 예정 없이 떠나기에 아침, 점심, 저녁, 새벽 등 시간도 예측할 수 없다.
장기를 가지러 온 의료팀은 장기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 후 순번이 된 수여자를 연락해 급하게 입원시켜 수술준비를 하도록 한다. 한 사람의 생명은 꺼져가지만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자신이 살아생전에 멀쩡한 장기들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내어준 뇌사자는 이제 인공호흡기도 뺀 채 수술실에서 마취과 의사의 사망선고를 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면 마취과 사람들도 없고 외과 의사와 간호사는 마지막으로 최대한 멀쩡한 사람처럼 몸을 봉합(suture)해준다. 그때 기분은 참 착잡하다. 보통 의사들도 수술 끝나면 술 한잔 해야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말이다.
보통 환자 이름과 등록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차트를 보게 되는데 이름 아래에 왜 뇌사상태가 되었는지 이유를 간단히 적어놓는 칸이 있다. 눈에 훤히 들어오니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막달에 임신부가 교통사고가 나서 아이만 제왕절개로 살리고 본인은 뇌사자로 장기기증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6살 아이인데 놀다가 블라인드 줄에 목이 걸려 목 졸림(hanging)으로 뇌사상태가 된 경우도 있었다.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두 환자다. 우리 주변에서 상상도 못 할 일들로 갑자기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시시콜콜 언론에 나오지 않을 뿐 수많은 이유로 뇌사가 되어 누워있는 환자들. 그 환자들 중 살아생전에 장기이식 의사를 표시했거나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가족을 설득해서 장기이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요즘은 뉴스로 종종 뇌사자장기이식 수술에 대해 사연을 동반한 기사로 나오던데 예전보다는 인식이 많이 양호해진 것 같다.
과연 내 가족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대학시절 친구들과 장기기증 서약서를 쓴 적이 있다. 설마 하면서 했던 일인데 대학 졸업 후 신규간호사 시절 단짝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본이 이랑 골수가 맞는 급성백혈병 환자가 있다며 골수를 기증해 줄 수 있냐고 협회 측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친구는 큰 결심을 하고 나와 세부검사를 받으러 협회에 갔다. 그러나 일주일 뒤쯤 기증받을 환자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급성백혈병이라서 공여자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많이들 세상을 뜬다고 했다. 그 일주일이란 시간도 병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병마와 싸우는 너무 긴 시간인가 보다. 신상정보를 다 공개하진 않고 남/40대. 이런 식으로 성별과 나이대만 알려준다. 혹시나 대가성으로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장기이식 수술은 일반적인 수술과 달리 특수한 상황에서 행해지는 수술이다. 나를 온전히 떠나보내지 않고 어딘가에서 오랫동안 숨 쉬게 할 수 있는 방법. 의미 있는 장기이식 수술에 동참할 수 있었던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10여 년 전 수술실에서 느꼈던 가슴 뭉클한 감동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