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ARPE INDIE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 harmon Mar 19. 2023

걱정을 희열로 승화시킨 무도광이 되어

[리뷰]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Dance Fever]

팬데믹 기간에 춤을 추고자 하는 디오니소스적 욕망은 금기시되었다. 방탄소년단(BTS)의 'Permission to Dance'가 흥행을 이끈 것은 중독성이 강한 댄스 팝 장르의 곡인 이유도 있지만 힘든 시기에 희망찬 메시지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대면 접촉은 제약을 받았고 밖도 갈 수 없다는 억눌린 심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봉쇄와 격리에 반하여 격렬한 춤을 추고자 했던 아티스트가 또 있는데, 바로 영국의 인디 록 밴드 플로렌스 앤 더 머신(Florence + The Machine)의 프런트우먼 플로렌스 웰치이다. 웰치는 <Dance Fever>를 통해 리스너들에게 댄스파티에 참여할 수 있는 초대장을 보낸다.


팬데믹을 형벌이자 신의 저주로 여긴 웰치의 고뇌가 제법 느껴진다. 오르간, 하프, 튜블러 벨 등을 집대성하고 짙고 바로크풍에 가까운 웰치의 목소리는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자정에 시리멀을 먹으며 눈물을 흘려대니 / 살아 있길 잘했네 / 하지만 신이시여, 당신도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 우리에게 저지른 일에 사과를 하게 될 거예요'라고 'Girls Against God'에서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 나오는 인물을 차용한 'Cassandra', 일상을 빼앗긴 시점에서 소소한 행복을 회고하는 'Daffoldi'에서도 흐느낀다. "내 마음은 지쳐서 나가떨어져버릴 것만 같았고 / 세상도 슬픔에 잠겨 굽어버렸지만 / 그럼에도 새들은 계속 재잘대지."


데믹 전부터 무도광(舞蹈狂, choreomania)에 매료되어 있던 웰치에게 막무가내의 춤사위는 생존의 몸짓이자 라스트 댄스에 가깝다. 'Free'는 잭 안토노프의 프로듀싱으로 급박한 신스가 몰아치는 블리처스(Bleacher)와 닮아 있다. "음악을 듣고 리듬을 느끼며 / 춤을 추는 만큼은 자유롭지." 광적인 자유분방함에서 카타르시스적 해방감으로 옮겨가며 리스너들을 고양감으로 휘잡아놓는다. 세태를 첨예하지만 가볍게 꿰뚫는 한가운데, 데이브 베일리의 연금술이 더해진 'My Love'로 희열의 불길이 붙으며 지축을 흔든다. 브로드웨이의 무대에 서서 혼신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뮤지컬 배우의 모습도 작용했으리라.

앨범을 장악하고 있는 컬트적 요소와 복고주의ㅡ라파엘 전파, 고딕소설, 호러영화 등ㅡ는 <Dance Fever>를 통해 21세기에서 15세기로 약 600년의 간극을 건너뛸 수 있게끔 도와준다.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바리톤으로 이기 팝을 모사하고 있는 'Restraint', 환청을 따라 마구 낭랑하는 어쿠스틱 기타의 'Dream Girl Evil'은 기이하지만 당차다. 각각 해리 스타일스와 세인트 빈센트, 수프얀 스티븐스의 프로젝트에 공동 참여한 키드 하푼과 도브맨의 콘셉트 프로덕션이 특출난 덕도 있다. ('Choremania'의 후반부 백보컬은 마녀사냥을 독촉하듯 만트라를 왼다) 앨범 아트워크를 보아도 중세에 걸맞게 재현되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시대적 담론을 꺼내든 마당에 개인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비치기도 한다. 주검이 가득한 공허의 성에 울려 퍼지는 'King'은 비탄의 크레셴도로 전이되며 웰치는 커리어와 가정 사이의 정체성을 베어낸다. "난 누구의 엄마도, 신부도 아닌 왕이야." 혼탁한 자장가 'Morning Elvis'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엮으며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과거를 씁쓸하게 훑는다. "오, 내가 여전히 두려워하는 걸 너도 알잖아 / 난 여전히 정신이 사납고 두려워 / 하지만 무대에 올라간다면 / 위기를 모면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보여줄게."


지난 몇 년간 팬데믹을 소재를 끌어들이는 아티스트들은 우후죽순 생겨났기에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는 인상을 심었다. 물론 어떤 장르, 어떤 아티스트든 간에 타격이 불가피했던 것은 당연하고 여전히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음악인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Dance Fever>는 햇볕으로 나갈 수 있게 하지는 않더라도 굳어가는 몸을 음울한 시대상황에 동화되지 않도록 들썩이게 한다. 겉으로는 시대적 흐름에 합류하며 인간 군상의 심리를 파고드는 것 같지만 한 개인의 처절한 사투와 위기의식에서 갈라져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Dance Fever>는 영국 차트에서 정상을 오른 바 있으며, 밴드 디스코그래피상 최고의 앨범이라며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 King

2. Free

3. Choremania

4. Back In Town

5. Girls Against God

6. Dream Girl Evil

7. Prayer Factory

8. Cassandra

9. Heaven Is Here

10. Daffodil

11. My Love

12. Restraint

13. Time Bomb

14. Morning Elvis

매거진의 이전글 걸출한 싱어송라이터들을 호출하였음에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