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가 울기 때문에 여름이 뜨거운 것
여름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것이 매미 소리다. 어릴 적 정겹게 들리던 소리로 기억되는 매미소리가 어느덧 도시의 소음공해로 인식되고, 한 여름밤의 단잠을 빼앗아 가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지 오래다.
매미는 땅속에서 짧게는 2~3년, 길게는 7년 정도를 애벌레인 상태로 땅속에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라다가 땅속에서 나와 성충이 되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간다. 천적이 없는 저녁 시간에 번데기 상태에서 2~6시간의 탈피의 과정을 거쳐 2쌍의 날개를 달고 자유의 몸이 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결과라는 말처럼 그냥 되는 게 없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품고, 사연을 안고 태어난 매미지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태어나는 과정에서 다른 곤충에 잡아먹히기도 하고 껍질을 벗지 못해 죽고 만다. 그러니 생존 자체가 우리가 태어난 확률만큼이나 높지 않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땅속에서 보내다가 지상에서는 겨우 2~4주 정도 살다가 죽는다. 이 짧은 기간 짝을 만나 다음 세대로 종족을 번식시키고자 열심히 운다. 얼마나 치열하고 처절한 생(生) 인가. 문득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詩)가 생각난다.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대목에서 죽는 순간까지 울어대는 매미나 연탄재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느냐고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행복해지고 싶다면 생각을 다스리고, 에너지를 분출시키며, 희망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목표를 세우라"라고 했다. 삶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목표를 세우고 삶의 좋은 흔적을 남기려고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라는 말처럼 눈을 뜨면 당연히 맞이하는 하루가 어떤 사람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을 죽인다 또는 소일거리를 한다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을 의미하는데, 매미가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잡고 애타게 울어대는 것을 보면 허투루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리학 용어에 '폴리애나 현상(pollyanna hypothesis)'이라는 것이 있다. 두렵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폴리애나는 근거도 없이 지나치게 낙천적인 사람을 일컫는다. 지나친 긍정이 가져오는 일종의 부작용이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매미의 생존 기간처럼 우리의 삶의 기간도 길지 않다. 매미가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해 울어대듯이 우리도 주어진 시간 동안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사람은 조금 먼 미래를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명 먼 미래 효과(far future effect)이다. 그래서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후회한다.
매미는 여름 한 철 울어댄다. 너무 짧게 살다 가지만 인간의 삶도 짧고, 한 철이니 열심히 살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알려주고 있다. 먼 훗날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려면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산책하던 중에 배를 하늘로 향해 누워있는 어린 매미를 발견했다. 날개가 돋아나는 우화(羽化)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날개가 온전히 펼쳐지지 못해 그냥 나무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집으로 가져와 풀과 나뭇잎을 넣어 집을 만들어줬다. 개미의 공격도 피하고, 짧은 매미의 생애와 매미가 주는 교훈을 알기 때문이다.
수컷 매미는 수명이 암컷보다 더 짧다. 한 여름에 귀를 따갑게 울리는 매미의 소리는 짝을 찾기 위한 수컷 매미의 타는 목마름이다. 그래서 더 서럽게 울 수밖에 없다. 소음이 아닌 사랑의 세레나데로 여기면 어떨까. 밤에 우는 것은 인간이 만든 불빛의 영향이 크다고 하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매미는 5가지 덕이 있다고 한다. 첫째, 곧게 뻗은 입이 갓 끈과 같고, 이는 학문에 뜻을 둔 선비와 같다고 하여 문덕(文德), 둘째, 사람이 힘들게 지은 곡식을 해치지 않으니 염치가 있다고 하여 염덕(廉德), 셋째, 집을 짓지 않으니 욕심이 없다고 하여 검덕(儉德), 넷째, 죽을 때를 알고 스스로 지킨다는 신덕(信德), 마지막으로 수액을 먹고 사니 청렴하다고 하여 청덕(淸德)이다, 여기에다 매미가 탈피를 할 때 허물인 껍질은 선태(蟬蛻)라고 하여 약재로 쓰인다고 하니 매미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한편 사람은 평균 80여 년이라는 긴 삶을 산다. 매미와 같은 곤충의 삶과 사람의 삶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깨달을 것은 많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매 순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맹목적으로 삶을 치열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지나가면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므로 늘 의미를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의 동기(Drive)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반응에서 나올 수도 있고, 처벌과 보상에 따라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는 동안 스스로 의미를 찾아서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안도현 시인의 ‘사랑’이라는 시(詩)에서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기 때문에 여름이 뜨거운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사랑이란 이렇게 매미처럼 한사코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이라 했다. 아침에 발견된 매미가 주는 교훈은 결코 작지 않다. 관심 덕분인지 매미의 주어진 삶의 30분의 1, 즉 하루 정도 나와 같이 살다가 비련의 삶을 마감했다. 결국 유전자를 남기지 못한 것이다. 매미의 7여 년간의 기다림, 하루의 삶은 우리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울 수밖에 없다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게 한다. 어느덧 뜨거운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