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소 Nov 10. 2020

퀸스 갬빗(Queen's Gambit)이라...

번역

 요즘 넷플릭스에서 나름 핫한 퀸스 갬빗.

 미드를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닌데, 며칠 전 출판사에서 넷플릭스의 퀸즈 갬빗 원작 소설을 번역해달라고 해서 일단 틀어봤다. 전부 7화로 구성되어 있고, 미니시리즈로 제작된 거라 두 번째 시리즈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뭐, 인기 끝판왕이 되면 더 제작될 수도 있겠지만.


 단숨에 1화부터 7화까지 다 봤다. 한 줄로 총평을 하자면, 아 나도 체스 배우고 싶다. 나도 저 체스판 갖고 싶다, 이다.

 막 긴장감 넘치고 눈을 뗄 수 없는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뭔지 모르겠는 무언가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이다.   

 퀸스 갬빗은 체스 천재 소녀의 성공과 좌절을 담은 작품인데 워낙 체스에 관심이 없던 터라, 글쎄 재미있으려나? 체스? 좀 생소한데?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무척 흥미로웠다. (물론 체스를 알았더라면 드라마가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을 것이다.)

 일단 체스를 좀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파고들었다. 그래야 원작 소설을 더 잘 이해할 테고, 번역의 글맛도 더 잘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얼른 체스를 배워서 나도 영상 속의 포스 쩌는 체스판에 체스를 둬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집구석에 처박혀있는 양면형 자석 체스판 말고. 한쪽은 장기판, 한쪽은 체스판인 그런 거 말고. 진짜 웅장하게 생긴 체스 기물 하고 세트인 원목 체스판에.

그렇다. 나는 뭐 하나 시작하려고 마음먹으면 장비부터 사는 스타일이다. 돈도 없으면서 '취미는 장비부터'라는 엉터리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 쓸데없이 눈만 높아서 내 마음에 드는 원목 체스판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순간, 번역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지를까? 하며 지름신이 살짝 내려왔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올려 보냈다. 대신 알라딘에서 체스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를 구매했다. 그것도 두 권이나. 어린이용과 성인용으로. 일단은 입문서를 꼼꼼히 읽으면서 집에 처박혀있는 미니 체스판으로 좀 해보다가 취미로 삼을만하면, 그리고 남편과 애들도 체스에 반응을 보이면, 원목 체스판으로 살 생각이다.


 지금까지 어떤 책이나 영화, 드라마가 내 취미생활에 영향을 미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나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걸 귀찮아하고, 낯선 것에 선뜻 다가서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퀸스 갬빗으로 인해 왠지 새로운 취미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다. 꼭 번역 작업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체스를 배우고 싶다는 어떤 열망이 가슴속에서 일렁인다.


 어떤 작품이 목석같은 어느 누군가를 이토록 흔들어 놨다면, 그 작품이 어느 정도는 괜찮다는 뜻 아닐까?

 원작 소설은 또 어떨지 어서 읽어봐야겠다. 번역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이 엑스 하우스, 마이 뉴 하우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