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와 삶과 죽음을 생각하다]
오랜만에 #노무현시민센터 에 들렀다. 마음이 쉬어가던 곳. 오갈 데 없이 쓸쓸한 마음일 때 이곳에 자주 머물렀다. 토지 스무 권을 고스란히 이곳에서 빌려 읽었고, 인도네시아어 공부도 이 공간 덕에 느긋하게 할 수 있었다. 이제 나도 공간 부자(?)가 되어 자주 올 일 없다만, 마침 관심 가는 강의가 있어 어제,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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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조력사. 암으로 고통받는 엄마의 존엄사에 동의한 딸, 그리고 스위스에서 엄마를 잘 떠나보내드린 작가 #남유하 . 그 과정과 이후의 애도를 책으로 엮었다. [ #오늘이내일이면좋겠다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않느냐는 다큐멘터리 취재 기자의 질문에 일초도 주저없이 ‘매에는 장사 없다’고 작가의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스위스까지 동행했던 아빠는 ‘우리가 엄마를 그렇게 보내드린 게 잘한 걸까, 아빠?’라는 딸의 질문에 찬성한 게 아니라 반대할 수 없었을 뿐이라고 답하셨단다. 하나뿐인 아들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보류, 스위스에 동행하지 않았다. 엄마를 기리는 자리에 서운함과 분노 비슷한 감정으로 참석하지 않은 엄마의 형제 몇몇도 있다.
놀랍게도 모처의 조사에 의하면 82프로가 조력사에 찬성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스위스의 존엄조력사 관리처인 디그니타스에서 OK 사인 즉 그린라이트를 받은 사람 중 실제로 실행에 옮긴 사람은 30 프로에 불과하고, 나머지 70 프로는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자연사 혹은 병사하기도 한다고. 실행 장소인 ‘블루 하우스’까지 갔다가 마음이 바뀌어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존엄조력사 아닌 존엄 자살을 선택한 이들을 몇몇 알고 있다. 아주 가까운 이도 있다.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 중 거푸 자살 시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들어 알고 있다. 나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고통의 극한에 처하면, 가족에게 한없는 짐이 된다면 비슷한 마음을 가질 것 같다.
한 시간의 강의 후 조별로 나름의 토론 시간이 주어졌다. 강의를 신청한 각자의 이유를 저절로 알게 됐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웰다잉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다. 내 의지로 내 몸을 둔하게나마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다고, 죽음이 늘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 아이들과도 너무 무겁지 않게 나의 죽음에 관해 말을 건넨다고, 장례식장에서 틀어줬으면 하는 노래를 정해 친구들에게 일러두었다고 얘기했다.
죽음은 순간이지만 ‘죽어감’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 살 한 살 나이 먹어가며 내가 나의 죽어감에 대비하고, 너무 갑작스럽지 않게 아이들이나 지인들과도 그런 마음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또한 생명 존중과 자기 결정권이 대치될 때, 생명 그 이상의 가치인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존중하기 위해 ‘나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해 주길. 이천만 원을 들여 스위스까지 가지 않아도 되길, 스위스까지 가기 위해 비축한 체력을 내 집, 내 공간에서, 내 사람들 곁에서 다 쓰고 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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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딸에게 물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동행 해줄 수 있겠어?
그럼, 엄마. 당연히 그래야지.
어제 뵌 남유하 작가님의 밝고 안정된 모습을 떠올리니, 그런 부탁을 맡기어도 딸에게 너무 미안해 하진 않아도 되겠다. 하늘에서 더 큰 축복을 내려줄게, 딸!^^
#삼층서가에서유서쓰기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