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여행 중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돌고래를 꼽을 것이고, 최악의 경험을 꼽으라 해도 돌고래를 꼽을 것이다. 오늘(4월 17일), 종일 기분이 떨떠름한 것은 아마도 이른 새벽 다녀온 돌고래 워칭 투어의 영향이 아닌지. 로비나에 괜히 왔다.
여행 팀 선생님들과 공항에서 작별한 후, 다시 사누르(Sanur)로 돌아와 기진해 뻗었다. 이틀쯤 침대에 거의 붙어 있듯 지내다 기운을 찾을 무렵 어디로든 떠나야 할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투어 팀과 사누르를 찾은 게 벌써 다섯 번째이니, 마치 일터처럼 느껴지기도 해 어디든 먼 데로 뜨고 싶었다. 로컬들이 발리 최고의 섬이라며 권하던 아메드(Amed) 비치. 한라산 같은 아궁산과 삼양 해변 같은 검은 모래사장에 혹한 걸 보면, 어쩌면 제주에 가고 싶었던 걸지도. 아메드에서도 역시나 먹고 자고 마시고 뒹군 거 밖에 한 게 없어 다시금 마음이 쫓겼다. 일 쫑하고 어느덧 발리 닷새 째인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두 시간여 움직여 로비나(Lovina) 비치에 닿았다. 나에게도 돌고래에 관한 근사한 추억이 있었기에.
돌고래 워칭 투어에 대해 전혀 알아본바 없이 게스트하우스 직원을 통해 선뜻 신청했다. 뭘 타고 나서는 지, 어떤 방식의 관람인지 전혀 모른 채로. 배는 새벽 여섯 시 반쯤 출발했다. 그때만 해도 그게 그리 소란한 일일 줄 몰랐다. 워칭 지점까지 제법 먼바다를 달렸다. 바다 한 가운데 수십 척, 혹은 수백 척은 되지 않을까 싶은 방카 모양의 작은 배들이 운집해 있었다. 엔진 소리가 요란하다. 얼마지 않아 돌고래 예닐곱 마리가 몸을 드러내며 잠깐 바다를 가르다 사라진다. 처음엔 환호했다. 미끈한 몸체가 파도와 결을 맞춰 유연하게 바다를 난다. 다시 얼마지 않아 서서히 깨닫는다. 아. 이건 정말. 아수라장이로구나. 사냥이 따로 없네. 어쩌면 이 아이들에겐 이게 전쟁 같은 일은 아닐까.
수십 척의 배가 돌고래 워칭을 사냥하러 이리저리 오간다. 차츰 안 됐다 여겨지다가도, 이따금 남의 배 코 앞에 돌고래가 나타나면 부럽기도 하다. 마침내 돌고래 떼가 활기찬 몸놀림으로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곳을 스쳐 지나가니 좋다고 환호한다. 이제 생각하면 그 몸짓은 활기가 아닌 처절한 도망이었을 지도. 모터 보트의 엔진 소리는 내 귀에도 소란한데, 소리(초음파)로 소통하는 돌고래에겐 얼마나 끔찍한 소음이었을까. 찾아보니, 나이트클럽 스피커 바로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고통에 준한단다. 게다가 밤새 사냥하고 아침에 연안으로 돌아와 쉬거나 새끼를 돌보는 돌고래들은 워칭 투어로 인해 만성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고. 숙소에 돌아와 동영상을 돌려 보니 이보다 못할 짓이 있을까 싶다. 보트와 보트 사이에서 몇 번 헤엄치다 사라지던 돌고래 떼, 환호와 아쉬움으로 괴성을 내지르던 사람들. 스크루에 다치는 돌고래도 이따금 있겠지. 지구에 못된 짓하는 생명체는 인간 말고는 없다. 나도 그중 하나다. (중국인은 또 얼마나 많던지. 나도 꼴값, 그들도 꼴값.)
내 여행 가장 최고의 순간도 돌고래다. 룸바룸바(lumba-lumba, 돌고래; 인도네시아어)!!! 열 명의 벗들과 함께 기쁨에 겨워 소리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파라다이스 같은 바다가 있는 곳, 파푸아의 라자암팟(Raja Ampat). 여행 중 언제가 가장 좋았냐 물으면, 예전엔 잠시 주저하기도 했으나 그날 이후론 일초도 쉬지 않고 그 순간을 꼽는다. 돌고래를 보게 될 거란, 볼 수 있으리란 정보 없이 길을 떠나다 우연히 돌고래를 만난 날. 배 후미에서 여행을 돕던 라자암팟 소년 죤이 “룸바룸바, 룸바룸바! 돌핀! 돌핀~!!” 소리 높여 외쳐 그제야 돌고래 떼를 발견하곤 환호하던 우리.
- 저거 백마리는 되겠다
- 아냐 이백 마리도 넘어
- 그럼 삼백 마리도 넘어?
- 응, 그보다 더 많을 걸?
- 와~~ 천마리 쯤 되는 거 아냐?
- 응, 그럴 지도 몰라. 너희들은 정말 운이 좋은 거야!
- 그러네, 우리가 너무 너무 인도네시아를 좋아해서, 신이 선물로 보내줬나봐~!!
죤과 나의 대화... 그날 우리의 톤과 억양이 귀에 생생하다. 그보다 행복한 대화는 여행 중 없었다. 파도의 날을 닮은 돌고래의 지느러미, 힘찬 몸놀림, 생기, 강한 연대, 전진, 살아있음의 증거, 너희들도 우리도 함께 지구의 일부라는 유대감, 혹은 자부심. 그리고 마음 한편의 아련한 기분. 벅차게 끓어오르는 마음 저 아래에 또아리 트는 차분한 여행자의 마음. 지구 여행자. 돌고래도, 나도. 어딘가로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
그날, 막연하고 아련하던 감정을 SNS에 이렇게 남겼다.
#라자암팟 #rajaampat
아보렉에서 피아네모 가는 길,
수 백 마리의 돌고래 떼와 마주했다
파도와 같은 속도로
파도의 결에 맞추어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바다를 밀고 나간다
우리는(인간은) 저들 만큼 연대하는가,,
저만치 보내놓고 조금 먹먹해졌다
외롭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해보았다
무리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면
저들 중에도 외로운 돌고래가 있겠지
돌아오는 길엔 파도의 날이
돌고래 지느러미처럼 보여 자꾸 눈을 비볐다
돌고래는 파도를 닮았고
오늘 우린 돌고래를 담았다
아직도 뭉클, 이 기분을 이어가
꿈속에선 돌고래와 정어리 잡으러 다녔으면
현실은 꾸깃한 물쫄보지만~ㅎ
#경이롭다
.
.
.
로비나 돌고래 워칭은 내게는 수치와도 같은 여행 경험이었다. 멈출 수는 없을까. 비치에서 만난 많고 많은 선량한 로비나 사람들을 떠올리면, 당장 멈춰야 한다는 생각에도 제동이 걸린다. 우선 나 스스로라도 순리에 맞지 않는 여행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의 여행의 절정, 라자암팟 돌고래떼의 힘찬 전진처럼,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자기 몫의 걸음을 방해 없이 쭉쭉 뻗어갈 수 있다면. 제발 인간이, 고만 좀, 이기적이고, 고만 좀 잔인했으면. 최소한의 윤리 의식을 어느 순간에도 버리지 않았으면. (나부터 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