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이 구절에 꽂혔을 땐, 실은 모르고 좋아했다. 독일어가 폼나 보여 그랬나. 프라이 아버 아인잠. 자유롭지만 고독한, 그 기분. 이제야 뭔지 알겠다. 일요일에서 금요일 아침까지. 충동적으로 제주에 내려와 머물고 있다. 항공료가 다소 비싸기에 마일리지를 사용했다. 게스트하우스 조식 먹을 때만 말 섞고 나머진 입 꾹, 자유롭고 고독한, 고독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다. 좋다. 너무 좋다.
** frei aber einsam(대문자가 참 안 어울리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브람스의 인생철학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은 그의 친한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좌우명이었다고. 브람스는 이 문구의 머리글자를 따서 F-A-E(파-라-미) 음형(Musical Figure ; 짧은 길이의 음의 조각이나 패턴)을 사용하여, 친구 요아힘을 위한 소나타를 작곡했다고 한다. 아우, 낭만적이다. 브람스도 그에 걸맞게 살았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클라라 슈만을 연모하며 독신으로 살아간 일상에서도.
.
.
한두 주 애달팠다. 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백 번 접혔다. 애써 감춘 것을 애틋한 문장 하나로 아이들이 다독일 때 홀연 무너진다. 을지로에서 부암동까지 한 시간 반여를 걸으니 꾸깃한 마음이 조금 펴졌다. 걸어야겠다, 우야든동. 걷다 쓰다 하는 수밖에. 조천 언니네도 가기 싫다. 아는 사람과 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 프라이 아버 아인잠 하고 싶으니까. 서귀포 슬로시티게스트하우스는 여전히 1인실이 삼만 원이다. 닷새를 예약했다. 꼼짝 안 할 것이다, 그 언저리에서.
게하는 마치 시트콤의 배경 같다. 예전보다 국적이 다양해졌고, 예전보다는 다소 소란해졌다. 여섯이 떼 지어 몰려온 싱가포르 남녀 혼성 팀이 제일 소란하다. 인원도 많지만, 목청도 우렁차다. 어려서부터 이어 온 친구들 모임이라고. 오로지 제주에서만, 슬로시티게하에 머물며 일주일 여행 중이란다. 여행의 맛을 아는 사람들 같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온 ‘잇치비치(별명)’는 모로코 출신인 부모님을 닮아 모로코 사람 같다. 10월부터 서울에 머물고 있고, 역시나 K 컬쳐에 빠져 있다. 다리가 아주 기이일다. 잇치비치에게 과일 모찌를 나누었다 말하니, ‘한국사람은 왜 그리 외국인에게 친절한지 모르겠다, 한국인에겐 그리 친절하지도 않으면서.’라며 면전에서 면박 주는 나보다 좀 어린 여인이 있다. ‘내 딸이랑 동갑의 아이가 씩씩하게 여행하는 모습이 좋아서 응원하고 싶었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한국 사람에게도 다정하다는 말도 차마 더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면 저리 뾰족할까, 안되게 여겼다. 내가 비겁한 걸까?
인도네시아에서 온 처자 넷과는 잠깐 말을 섞었다. 오랜만에 쓰는 인니어, 제대로 표난다. 어버버버, 짧은 언어인데도 다들 신기해 한다. 그게 더 부끄럽다. 인도네시아 제주 무비자 입국이 종료된 줄 알고 나의 친구 루시를 초대 못 했는데, 여전히 무비자란다. 아뿔싸. 당장 루시를 불러들여야지. 루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항공료 잘 주시하자고.
여기서 닷새는 긴 축에 끼지도 못한다. 보름 이상 머무는 한국 언니들, 한 달 가까이 머물고 있는 프렌치. 다들 알고 있구나. 여기가 서귀포 여행의 성지인 것을. 나와 똑같이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가진 아저씨를 만난 것도 신기하다. 그 역시 해마다 1, 2월이면 여기서 두어 주 묵어 간단다. 4, 5월의 꽃가루와 미세먼지를 견디지 못해 그 계절엔 꼭 발리 우붓에 머문다고. 족발(족자카르타 – 발리) 투어가 마무리되는 5월 7, 8일께에 우붓에서 뵙기로 했다. 열흘 쯤 여기 묵고 있는 영자 언니도 친구와 함께 족발 투어에 참가하겠다고 하신다. 발리에서 그렇게 그렇게 뭉치게 생겼다.
1월 초 눈과 함께 입도해 이곳에 머무는 중인 프렌치 여성 앨리스는 ‘느린 여행자’이자 ‘샤먼’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프랑스를 뜬 지는 일 년쯤 되었고, 베트남과 태국 등을 거쳐 왔다고. 두 나라에서는 전생에 살아봤음을, 한국은 처음임을 분명하게 느낀단다. 제주에 정착할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이성적 판단이 아닌, 영감과도 같은 것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샤먼과 제주는 당연히 곧장 연결된다. 본향당이 있는 송당리를 추천했다. 템플 스테이도 권했다. 칠머리당영등굿이 언제더라. 몇 번을 벼르고도 못 본 제주 샤머니즘의 절정, 영등굿을 앨리스랑 함께 보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기에 2월에 다시 제주에 오거나 혹은 인도네시아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음~ 하던 앨리스는 내게 술라웨시로 가란다. 오마이갓. 진우석 작가님이 막 다녀오신 술라웨시를 안 그래도 꼽고 있었다. 그곳엔 죽음이 가까운 도시 토라자가 있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에 관심도 없고, 다녀올 계획도 전혀 없는데 문득 그냥 술라웨시가 떠올랐다고 했다. 본인은 그저 메시지를 받을 뿐이라고. 너 진짜 샤먼인 거니.
엊저녁엔 그녀가 나를 서귀포국제음악페스티벌 공연장으로 초대했다.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무료 공연. 사흘간 열리는 행산데, 나 빼고 다들 벌써 이틀간 다녀온 눈치다. 종일 걷고 쓰느라 기 빨린 나는 저녁이면 술을 먹어야 했다. 게하 문화답게 다들 조식 먹으며 일정을 나누고 동선을 맞춘다. 프라이 아버 아인잠 하는 나는 어디에도 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청해 온 앨리스의 권유는 거절할 수 없었다. 안 어색한 척 솰라솰라 쓸데없이 지껄이며 공연장에 들어섰다.
인터미션 15 분. 뭐라도 말해야 했다.
“너는 유럽의 나라 중 어디가 제일 좋니?”
“음.... 대략 스물 일곱 개 쯤 다녀온 것 같은데. 무조건 아이슬란드!”
소름. 요 며칠 출판사 편집장님이 권해주신 책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을 읽으며, 흠뻑 아이슬란드에 빠져 있던 중이다. 황량하고 쓸쓸하고 고단한 여행. 제주 유배를 넘어설 유배기를 쓸 수 있는 곳. 올해 안에 곧 갈 태세였는데. 그녀가 ‘아이슬란드!’라고 말할 때 전기가 왔다. 너, 너, 너. 샤먼........ 맞지. (별거 아니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냥, 운명이라 믿고 싶은 거지. 나, 술라웨시랑 아이슬란드 가야 할 운명이라고. 앨리스가 샤먼이어야 더 확정적 운명이 되니까.)
콘서트는 너무 좋았다. 오랜만의 클래식 공연이다. 실로폰을 닮은 악기 마림바에 반했고, 여덟 대의 첼로 연주에 홀렸고, 헨델의 ‘할보르덴 파사칼리아’에 넋이 나갔다. 앨리스가 초대하지 않았다면 오늘도 어느 포구에서 술이나 찌끄리고 있었겠지(그것도 좋은데.) 클래식 음악도 고전 문학도 깊은 곳의 중심을 건드린다. 중심까지 올 수 있게 평소 mind를 잘 다독여두어야지. 안 그러면 듣다가, 읽다가 잠들기 마련이니까.
정작 눈물은 이상한 데서 터져 나왔다. 단조의 첼로 선율에도 잘 버티던 설움이 씩씩하고 굳센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에서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지금껏 휘청대다 이제 막 걸음을 떼는 기분이다. 돌잡이 아이처럼 걷고 있다. 지휘자는 어쩌자고 관객의 박수까지 지휘하는지. 늙고 어린 관객들이 박수로 함께 걸었다. 이제 내 걸음은 내가 지휘해야. 걸은 만큼 펴지니, 아니 걸을 수 없다. 제주까지 충동적으로 나를 잘 이끌었다. 닷새를, 행진곡처럼 걸었다. 방법이 없어 걸었다. 잡념을 지우는 건 걸음밖에 없으니까.
숲을 걸으며, 그녀가 자주 쓰는 단어 ‘리시브(receive ; 받아들이다)’를 곱씹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이상의 무엇인 걸까. 운명이, 대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 나도 이따금 그런 적이 있지 않았나. 혼자 걷고, 혼자 여행하며 혼자의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메시지는 frei aber einsam일 때 찾아올 것이다. 그녀는 멘탈리티(mentality)와 컨셔스니스(consciousness)를 예민하게 구분했다. 생각의 태도나 마음가짐이 아닌 존재의 자각과 인지. 깨어있음. 대략 그렇게 해석한다. 깨어있어야 리시브할 수 있다.
생각의 끝에 나는, 내 모든 혼란한 정신세계를 ‘나도 샤먼’이라 정의하기로 했다. 더는 이상하고 기괴한 내 꿈의 근원도 궁금해하지 말자. 답이 없는 질문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도 자해고 자학이다. 예민함도 샤먼이요, 술 취함도 샤먼이요, 개꿈도 샤먼이요, 화를 눈물로 쏟는 비겁함도 샤먼이요, 이상한 애달픔도 다 샤먼이다. 그제,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에서 열여섯 곡을 굿하듯 뱉어낸 것도 샤먼이다. 왠지 그 밤엔 음란 마귀 같은 꿈을 꾸었다.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하나.(부끄러버라.) 더는 이성으로 나를 괴롭히지 말자고, 자유와 고독을 적절히 잘 누리며 살자고 공항으로 출발하기 한 시간 전 다짐하며 글을 맺는다. 서울은 아직도 시베리아 같다는데, 우야믄 좋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