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김보리

“나 몰래 밸짓을 다 하고 있었네…. 지들끼리 꿍닥꿍닥, 아이고-.”

“미리 얘기했으면 내가 더 재밌게 얘기해주지….”

“밸안간이라 깜짝 놀랐네-.”

“내가 뭐 연예인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이믄 베스트쎌러가 되겠지만….”

“으응-? 연애얘기도 이써-? 할아브지랑 7년을 연애를 했어. 고생도 많이 했는데 그런 얘기도 이써어-?”

“나 몰르게 했다는 것도 꼭 적어.”

“어어-? 내가 웃겨?? 웃기긴 뭘 웃겨어. 근데 친구들도 나보고 젤 재밌다고 그러긴 해…. 시원스럽긴 하지, 내가.”

“근데 제목을 뭘루 해애? 으음-. 내가 정해-? 내가 뭘 알어. 그름,

노년을 아름답게! 아니면…. 치매 방지! 한 번에 하늘나라로 가자!“

“할므니가 망신당해도 해야지. 손녀가 하고 싶다는데에.”


주인공 이을순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녀에 관한 꽤 많은 부분이 노출되기에. 못 쓴 글씨도 부끄럽고, 자랑할 것도 없는 당신의 삶이 책이 된다 하니 꽤나 민망한 모양이다. 미리 알려줬으면 더 재미있는 얘기, 더 감동적인 얘기를 해줄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한다. 뒤늦게 미담을 방출한다. 나 살아온 거 쓰면 소설책 열권은 나올 거라는 어르신들 말씀은 과장이 아니다. 그녀 역시 곡진한 사연을 많이 가지고 있다. 다 못한 얘기가 많은 줄도 안다. 소설책 같은 과거사 보다는 잡지처럼 가벼운 그녀의 일상에 집중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그녀의 오늘에 집중했다. ‘이을순 위인전’ 같은 거라고 송승윤이 듣기 좋게 설명하긴 했으나, 그보다는 책으로 엮은 '이을순 SNS'에 가깝다.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자는 것, 읽고 쓰고 공부하는 것, 알아간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빛깔 다른 조각보 같은 그녀의 일상은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한 번에 가느냐’가 유일한 고민이라는 그녀의 말은 태연하기만 하다. 지레 앞일을 내다보지 않고 그저 오늘을 같이 살 뿐이다.

그녀가 돌아왔다. 한 달이라도 있을 기세로 갔으나, 친구의 극진한 대접도 어렵고 친구 외출한 시간에 동그마니 혼자 빈 집을 지키고 있는 것도 여의찮았단다. 며느리 집에 올라온 지 벌써 한 달 보름이라, 딸은 당장 데리러 오겠다고 성화다. 을순은 갈 마음이 안 든다. 아들 옆에 있고 싶은 걸까. 며느리 편하라고 친구 집에 한 일주일 다녀온 사정은 며느리도 짐작한다. 끼인 아들도 편친 않다.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이 복잡하게 엮인다. 남의 사정 다 봐주며 살진 않아도 자식 사정은 미리 짚어 다 살피는 것이 ‘이을순하다’에 맞을 일인데 이런 것은 참, 조금은 안 을순하다. 을순스럽지 못할 만한 사정이 있겠지. 이럴 때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것은 김보리다. 거들 수 있는 사람은 송승윤이다.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을순스럽다. 그녀를 온전히 다 품을 순 없지만, 김보리와 송승윤은 다시 을순 수집을 이어간다. 여전히 생생하고 여전히 반짝이는 그녀의 시간을 효도보다는 우정에 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라는 응원으로, 우리를 지켜주었던 지켜봄의 사랑을 갚는다. 그날이 조금 길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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