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에게 관대함
아뿔싸. 들켰다. 몰래 다녀온 건데. 며칠 다녀온 걸로만 알고 계셨는데. 한 달 제주살이. 괜스레 미안해 친정 언니들에게도 시원하게 말 못하고 다녀온 여행이었다. 글로 엮어 둔 그때의 제주 여행기를 며늘네 다니러 온 이을순, 며느리 없는 사이 그만 다 읽고 말았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몰래 찾아 읽은 것이 화나기도 하며, 한편으론 시어머니 이을순은 또 얼마나 기막힐까 싶기도 하다. 남편만 집에 두고 한 달을 여행하고 온다는 것은, 아무리 관대한 어머니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어디 여행 가려거든 당신을 집에 불러두고 다녀오라고, 남자 혼자 집에 두는 거 아니라고 간곡히 당부한 적도 있었는데. (그러겠다고 답하진 않았다.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면 당연히 혼자 지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래도 이을순, 화내지 않는다. 그저 허허 웃으며 아들, 며느리 둘 다 참 대단하다고 한다. 통 크게 안사람 한 달 여행 가라고 한 아들도 장하고, 겁도 없이 혼자 한 달간 제주도를 다 돌고 온 며느리도 참 대단하다 하신다.
“아고. 아가. 너는 남자야, 남자. 세상에, XX만 안 달렸지, 남자라니까. 안 무서워어-? 혼자 자고, 혼자 돌아다니고. 아이고. 나는 못한다, 못해.”
다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 화내지 않는다. 아들 며느리 둘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며느리가 어디 가서 못 할 일 하고 다니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아들 귀하듯 며느리도 귀히 대한다. 아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러저러한 마음들이 모여, 며느리에게 관대하다. 어쩌면 꼰대의 반대는 ‘관대’일지도.
하지만 마지막에 한 방 먹이심. 여행기가 재미있더냐는 김보리의 질문에 쿨하게 한 말씀.
“으으응. 재밌지는 않더라-. 읽다 말았어.”
제사 그거, 간단히 하자, 간단히
김보리 처음 시집왔을 때, 그때 시가에 제사가 여섯 번, 설날 명절 차례까지 합치면 여덟 번의 제례가 있었더랬다. 첫 해는 올곧이 다 지냈던 듯하고, 이후 집안 납골묘를 만들며 그 많던 제사를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제로 바꾸고, 명절 차례만 치르게 되었다. 며느리 들이면 제사 다 없애자는 게 시부와 시모 간의 약속이었단다.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탓에 제례에 그리 거부감은 없는 김보리지만, 알아서 정리해 주시니 감사한 일이었다. 심술 있는 시어머니 같으면 당신에 비해 고생이라곤 없는 며느리가 얄미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마음 하나 없이 명절 당일에 친정도 곧바로 보내주셨다. 시모 모시고 사느라 설이고 추석이고 친정 가본 일이 없었던 이을순. 나 못한 거 너도 하지 마라, 할 수도 있는데 널랑은 편히 다녀와라 먼저 등 떠미신다. 이 역시 관대한 마음이다.
차례 음식도 차츰 간단해지고 있다. 처음으로 전을 샀고, 먹지도 않고 버리는 정종 대신 막걸리를 올렸다. 산적 대신 식구들 잘 먹는 갈비찜을 올리고, 식구들이 잘 먹으니 잘 안 올리던 문어도 올린다. 삼 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 제사는 아직 따로 지내고 있다. 첫 제사는 온전히 혼자 차리고 싶다 하셨다. 조촐하나 정성스레 차린 제사상 양 끝엔 초 대신 스탠드가 켜져 있었다. 초가 없어 그리 했단다. 자식들은 하하 웃는데 이게 뭐 별일이냐는 듯 무심하다. 죽은 사람에겐 마음을, 산 사람에겐 먹을 만한 음식을 너무 번잡하지 않게 차리는 합리적인 제사. 그 정도면 며느리들, 명절이 혹은 제사가 덜 두렵다.
하지만 또 그게 다는 아니니. 전은 산다 하시곤 만두를 이만--큼을 하자신다. 며느리 김보리 만두 한다 안 했는데, 네가 있어 이거 한다며. 속만 만들어놓곤 만드는 건 다 며느리 몫. 내년부턴 만두도 하지 말아요.
네가 싫으면 싫은 거지
시아버님은 집안 납골묘에 모셔져 있다. 아버님을 모시던 날, 김보리의 아들이 유골함을 들고 묘 안에 들어갔다. 작은 입구를 겨우 지나쳐 몸을 구겨 넣은 후 아들은 조심스레 놓여야 할 자리를 가늠하고 있었다. 김보리는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될 자린데 잠시 애도를 잊고, ‘저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날 이후 이따금 살고 죽음을 생각할 때, 내 묻힐 자리를 선명히 알고 있음이 섬뜩하고, 또 죽어서까지도 시가에 매여야 하나 싶어 갑갑하기만 하다. 쉬이 입에 올릴 말은 아니었으나 어느 날 비슷한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어머니 저는 근데, 거기 묻히고 싶지 않은데…. 무섭기도 하고 갑갑해서 싫어요.”
김보리가 우물쭈물 말했다.
이을순은 놀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볍게 툭,
“어, 그으래? 응, 그러믄 그렇게 해. 그래두 되지, 뭐. 네가 싫으면 싫은 거지.”
쉽게 입에 담기 힘든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그리 가벼이 털어 주니 감사했다. ‘시집을 왔으면 응당 시댁 도리에 따라야지!’라고 말했으면 어쩔 뻔했나. 자식들에게 죽어도 거긴 안 들어가겠다고 유언으로 남겨 뜻을 이를 수도 있었겠지만, 이따금 할 도리를 안 하는 것 같아 마음은 불편했을 게 아닌가. 사후의 일에 연연해할 거 뭐 있냐만, 필요 이상 잡념이 많은 김보리는 이제 한결 편안해진다.
‘네가 싫으면 싫은 거’라는 그 마음은 잘 들어주는 열린 마음, 내 마음 만큼 네 마음도 중요하다는 존중의 마음, 젊고 늙고와 상관없고 고부간 상하 질서와 관계없는 합리적인 마음. 줄여서 꼰대의 반대라 말한다.
교복 치마 그거, 할미가 줄여줄게
손녀 송승윤이 중학교 입학할 때, 김보리 모르게 낮은 말로 손녀에게 속삭이신다.
“승윤아. 엄마가 혹시 치마 안 줄여주면, 그거 할미한테 가져와. 할미가 줄여줄게.”
며느리 칭찬 제조기
손자 손녀의 똑똑하고 장한 일을 보면 에미 닮아 잘 한다며 며느리를 추켜세운다. 별것 아닌 거 하나만 고쳐놔도 “장인이네, 장인이야.” 부웅 띄워준다. TV 소리가 잘 안 들리신다기에 자막 기능을 찾아 드렸더니 “우리 며느리 공대생이네, 공대생이야-” 세련된 칭찬을 건넨다. “우리 며느리는 음주 운전을 안 해서 최고야, 최고.” 이런 칭찬까지 들어봤다.
손자에겐 설거지를 지도하다
시어머니 불호령 떨어질까 아들에겐 집안일을 시키지도 가르치지도 않았지만, 손자만은 시대에 걸맞은 좋은 남자 되라고 꼼꼼히 설거지를 가르친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와도 XX 안 떨어지는 줄 알고 계신다. 김보리에게 아들 제대로 못 가르쳐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제라도 가르치심 어떨까요, 어머니. 제가 좀 가르쳐도 될까요?
코쟁이랑 결혼해두 돼. 근데 띠는 꼭 봐야 하는데…,
선거철에 자식 말을 잘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