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런 거구나

by 김보리

그래서 그런 거구나, 육식이 나쁜거구나

“어머니, 소는 위가 네 개래요. 그래서 되새김질을 하면--”

“으응~? 그으래? 다시 말해 봐, 천천히.”

“…그래서 되새김질하며 트림하고 방구를 끼면 메탄가스가 나오는데 그게 이산화탄소의 300배래요.”

노트와 펜을 챙긴다. 이게 뭐 그리 당신께 중요한 일일까 싶은데, 또박또박 적으신다. “아가 네가 그래서 고기를 잘 안 먹는 거구나. 진작 말해주지, 난 또 왜 그런가 했지이.”


유난 떤다고 뭐라 하거나, 그래도 고기를 먹어야 기운 난다고 걱정이 길어질 수도 있는데 바로 공감한다. 안 먹고 살지는 못하겠지만, 지구를 위해서 좀 덜 먹어 보겠다고 하신다. 꼭 그거 아니더라도 무어든 지구에 해 되지 않는 일을 각자 한두 가지만 실천하면 된다고 말씀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 육전 말고 다른 전 해주시면 안 될까요.




며느리는 무슨 맥주를 좋아할까

하루를 마감하며 가볍게 맥주 한두 잔 하는 것은 김보리의 소확행 중 하나요, 루틴 중 하나다. 눈치로 그것을 알고 있는 이을순은, 요즘 슬금슬금 걱정이 된다.

‘며느리가 요즘 왜 맥주를 안 먹지…. 어디가 안 좋은가. 속이 아픈가.’

술이라는 건 대개 분위기로 먹는 법인데. 장기 합숙 중엔 이을순이 으레 마루를 차지하게 되고. 아무래도 며느리 김보리는 술 마실 흥이 나질 않는다. 먹고 싶은데 참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레 술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을 뿐이다. 그것을 염려할 만큼 이을순은 며느리의 술에 관대하다.

자주 묻는 질문,

“아가 너 근데, 좋아하는 맥주가 따로 있어-? 시에미라고 며느리 맥주를 한 번도 안 사줬어. 다음에 슈퍼 가면 사 올거야. 뭐 좋아해 너. 오비? 카스?”

술을 먹지 않으면서 남의 술을 챙기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술 좋은 줄 모르면서 매일 술 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마음일 때엔 더욱 감사한 일이다.

라거보단 에일이 좋구요, 과일 향 나거나 달달한 술은 별로에요. 색은 좀 짙고, 너무 라이트 하지 않은 걸로요. 아, 어렵죠, 어머니. 그냥 세계맥주 종류별로 네 개 사다 주세요!

"으응~? 세 개 사오라는 거야, 네 개 사오라는 거야...?"

아이고, 어머니!




내 밥은 내가 차려 먹는다

아들 집에 머물 때 며느리는 아침을 거르니, 며느리 깨기 전에 아침을 해결한다. 딸네 집에서도 대개는 그리 한다. 나 먹고 싶은 찌개는 내가 끓인다. 국도 내가 더 잘한다. 먹는 데 흥미가 그닥인 김보리인지라 자식 남편 걷어 먹이는데 소홀한 편이지만 나무라지 않는다. 바빠서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게 서로 마음 편타. 자식들과 함께 저녁 먹는 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니 밥상 차리는 일을 딸이나 며느리에게 미룰 이유가 없다. 이만큼이라도 기운이 있어 다행이다. 기운 남아있을 때까지는 내 밥은 내가 차려 먹는다.

끼니를 함께 하기 위해 애는 쓰지만 매끼를 차려 드리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러니 함께 지내는 일이 며느리에게도 한결 쉬운 일이 된다. 내 먹을 음식을 손수 준비하는 일, 김보리에게는 그 모습이 이따금 숭고하게 느껴진다. 내 식구 밥벌이는 내가 하는 든든한 가장처럼, 내 방은 내가 청소하는 철든 아이처럼, 맡은 일은 다 해내고야 마는 성실한 직장인처럼. 기력이 허락하는 한 온전히 나를 살아내려 애쓰는 노인의 뒷모습은 단단하다. 자식이라고 다 미뤄도 되는 것도 아니고, 미뤄야 할 일에 고집 세워 너무 움켜쥐고 있어도 안 된다. 때로는 화가 될 수도 있다. 미룰 일과 미루지 않을 일을 명쾌하게 구별하고 기운 닿는 한 내 몫의 일을 깔끔하게 다 해내는 어른. 꼰대의 반대. 그중 처음이 내 할 수 있는 한 내 밥은 내가 차려 먹기.

며늘아, 너도 그리 늙거라.


*그러나 부작용도 없진 않으니. 너무 편하게 주방을 쓰셔서, 주방을 너무 어지르심. 그것은 또 김보리가 참아야 할 몫이나, 잘 안 참아질 때도 있음. 어머니, 제가 살림을 잘 안 해서, 원래 주방이 깨끗한 편이라구요.




내게 필요한 건 내가 칼같이 계산

마트에 같이 가거나 무언가 심부름을 시킬 때, 칼같이 내 것을 계산한다. 내 물건이면 내가 사고, 가끔은 자식들 물건도 잘 사준다. 세 번 쯤 얻어먹으면 밥 한 번은 꼭 산다. 자식보다 돈이 많을 리야 없지만, 쓰라고 자식이 준 돈, 쓸 때는 시원하게 잘 써야지. 손자들 뿐 아니라 며느리에게도 이따금 용돈 몇 만 원을 건넨다. 큰돈은 아니어도, 주는 게 더 기분 좋다.


어머님과 시 큰어머니, 시 큰어머니 친구 분과 함께 식사한 적이 몇 번 있다. 다들 화통하고 경우에 밝으셨다. 곱창을 드시고 싶다길래, 꽤 비싼 식당으로 모셨다. 드시는 동안 음식 값을 지불하려 슬며시 계산대로 가보니 시 큰어머니 친구 분이 이미 식대 이상의 돈을 맡기고 들어가셨단다. 그때 이미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셨다. 좀 얻어 드셔도 흉 될 게 없는 나이셨는데, 그 전에 한 번 식사 대접했던 것을 오래 기억하시곤 젊은 나보다 서둘러 계산을 하셨던 거다. 작고하신 지 2, 3 년 쯤 되었다 들었는데, 그 분 역시 꼰대의 반대로 기억한다. 내 돈 귀하듯 자식 돈도 귀하고 남의 돈도 귀하고. 귀한 돈 또 귀하게 써야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마음. 꼰대의 반대처럼 돈 쓰는 마음. 귀하게 나이 드는 마음. 어머니 이을순도 그런 마음으로 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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