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순 체육관, 을순 소풍

by 김보리

을순 체육관

자기 전 그녀는 양쪽 겨드랑이 밑을 번갈아 가며 두드린다. 퍽, 퍽 소리가 날 지경이니 친다고 해야 할까. 양쪽 합쳐 100번 쯤 하고 나면 꿀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그와 비슷한 얘기도 들어본 적 없지만 짐작컨대 겨드랑이 림프절에 자극을 주는 동작인 모양이다. 무엇을 하든 꾸준하다. 한 번 치기로 하면 매일 친다. 겨드랑이 퍽퍽, 그 덕에 잘 잔다고 생각한다.

수영을 시작하고 10년 넘게 거르는 법이 없었다. 어느 면에선 지독하나 또 한편으론 관대하던 남편 권유로 40대 후반 무렵 골프를 시작하곤 골프연습장도 거르지 않았던 편이다. 성실에 비례해서 실력이 늘진 않았지만, 골프도 수영도 그녀 삶에 큰 낙이 되어 주긴 했다. 건강 문제로 온전히 수영할 수 없을 때에는 얕은 물을 걸었고, 기력이 덜해 필드에 나가지 못하게 되고서는 한 바구니라도 골프공을 두드렸다.


팬데믹 시대에 수영장도 갈 수 없고, 영감도 없고 기력은 더 없어 연습장 가기도 뭐한 날들. 자식에 짐이 될까 늘 건강을 살뜰히 건강을 살피는 그녀. 을순 체육관이 멈출 리 없다. 무엇이 됐든 체육관은 여전히 운영 중이다. 겨드랑이를 치는 게 다가 아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만큼 걷는 일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멀리 걷는 일은 다소 겁이 난다. 화장실이 가까이 있어야 마음이 편타. 며느리 집에 오면 동네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을 걷는다. 며느리나 손녀가 함께일 때 즐겁다. 정해진 양을 꼭 채운다. 뱅글뱅글 돌다가 알쏭달쏭한 동작의 맨손체조를 한다. 지켜보면 웃음 나기도 하지만 진지함이 느껴져 김보리도 송승윤도 웃지 않는다. 꾸욱 참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날씨 탓에 나가지 못할 때엔 마루를 맴맴 돈다. 숙제하는 마음으로 걷고 돈다. 베란다에서 아들, 며느리, 손녀가 러닝머신을 걸을 땐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다. 느린 속도로 길고 오래 제자리걸음을 한다. 자식과 손녀는 전화기만 바라보며 따로 걷고, 이을순은 유리창 밖 아들과 함께 걷는다, 며느리와 함께 걷는다, 손녀와 함께 걷는다.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은 이을순의 체육관을 언제나 응원한다. 가늘고 길게, 오래 운영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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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순 소풍

소풍도 싫어. 내 나이에 이만하면 안 다녀본 데 없어. 우리 영감이 성질은 잘 부려도 좋은 데 많이 데리고 다녔어. 일본, 동남아 다 다녀봤어. 미국도 가봤어. 라스베가스가 엄청 좋아. 경비행기 태우는데, 죽을 뻔했지. 제주도, 울릉도 다 가봤고. 어우, 이젠 여한 없어. 화장실 걱정에 멀리 다니지도 못해. 그저 며느리 손녀랑 동네 공원 한 바퀴 도는 게 제일이야. 매느리는 자꾸 어디 델고 갈라고 들쑤셔. 집이 제일 속 편한 데 그걸 이해 못해 그러지. 그래두 어디든 친구들이랑 다니는 게 제일 재밌는데, 늙어서 것두 못 다녀. 내가 무릎이 제일 성치. 멸치를 엄청 먹어 그래.


며느리 김보리에겐 종일 둘이 집에 있는 것보다 한두 시간 나가서 같이 바람 쐬는 일이 훨씬 쉽다. 세 끼 해 먹으며 하루 보내는 것보다 시간도 잘 간다. 이따금 이을순에게 나들이를 권하는데 두어 번을 빼곤 대개는 사양이다. 어르신들 소풍에 관한 아찔한 기억이 있다. 칠팔 년 전 쯤일까. 시어머니 이을순과 시외숙모, 시 큰어머니 세 분을 모시고 궁평항으로 바람 쐬러 간 적이 있다. 간 김에 전어 회와 구이, 매운탕 등을 거하게 대접했다. 무사히 어르신들을 모셔다드리고 돌아와 주차를 하는데 그때부터 난리가 났다. 토사곽란. 젊은 김보리가 그럴 제에 어르신들은 오죽했을까. 시외숙모는 한 사흘 입원까지 했다 하니 지금도 돌아봐도 아찔하다. 어른을 모시는 일은 적이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시어른과 같이 할 일이 그 외에 무에 그리 많겠는가. 최근엔 조르고 애교 부려 제부도에 한 번 다녀오고 가족 모임 있던 날 근처 서울식물원에 모시고 갔다. 어느 샌가 노랑 보자기를 챙겨 오셨다. 돗자리 챙겨야지 하면서 늘 챙기지 못하는 김보리에 비해 이을순이 더 꼼꼼하다. 바다 앞 마른 모래에 노랑 보자기를 깔고 앉으니 다른 자리가 안 부럽다. 궁댕이 붙이고 야채 김밥 두 줄을 나눠 먹으니 별 게 없어도 소풍 같다. 이을순은 역시나 성실히 걷고 때때로 율동 같은 체조를 하다가, 김보리의 성화에 며느리 사진을 찍어준다. 사진 찍는 일에 재미 붙이셨으면 좋겠다 싶은데 그 역시 심드렁하니, “저 좀 찍어주세요, 어머니.” 애써 청한다. 열댓 번을 눌러도 사진이 안 찍힌다. 손가락 끝이 너무 말라 그런가. 두 사람 다 부아가 치밀 때 쯤 돼서야 겨우 사진이 찍히고 그 후에도 대략 삼십 번 쯤 찍어서 사진 몇 장을 건졌다. 김보리 역시 찍기를 좋아하지 찍히기는 싫어한다. ‘어머님만 즐거우시다면 얼마든지 찍혀드리리다’ 하는 마음으로 각종 깨방정을 시전하며 찍혀 드렸다. 까부는 모습은 스스로도 어색하지만 어머님의 어리숙한 사진 솜씨에 나름 그 시간이 재미있기도 했다. 같이 재미나면 그게 젤이지. 그게 소풍이지.

서울식물원에서도 심드렁한 시간은 이어졌다. 방방 뜬 건 김보리. 내가 붕 뜨면 어머님도 방 뜨겠거니 생각하며 “어머, 예쁘다!” “우와, 이건 또 무슨 꽃이야?” “곱다, 고와!”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을순은 이제 꽃과 식물에도 흥미가 덜하다. 김보리는 이제 비로소 그런 나이, 꽃이 보이는 나이에 닿아 있다. 안보이던 꽃이 보이고, 안 예쁜 꽃이 없는 그런 나이. 야외정원에 해가 너무 좋아 조금 걸으셨으면 싶은데, 많이 걸으면 장에 지나친 자극이 될까 걱정이 많은 그녀는 역시나 많이 걷지 못하고 의자를 찾아 앉는다. 사진 몇 장을 찍어달라고 또 김보리는 조르고, 비뚜름하니 몇 장을 건졌다.

아들이랑 손자 손녀 만날 시간이 되니 그제야 이을순 기운이 살아난다. 손녀가 저쪽에서 올거라 하니, 횡단보도 앞에 서서 오매불망 기다린다. 저 끝에 손끝만 한 손녀 송승윤이 콩콩 걸어오며 커지니, 잰 걸음으로 성큼 다가간다. 걸음이 굳세다. 꽃보다 볕보다 소풍보다, 손주가 좋고 자식이 좋다. 자식 손주가 제일 재미있는 날이 김보리에게도 올까. 아직은 딴 재미가 너무 많은데. 희노애락도 늙는다는 게, 감정도 시든다는 게 서글프다. 오두방정 많은 할머니로 자라야지. 아니, 늙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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