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오디오 시스템 기반으로 한 전시 공간 ‘오디움 박물관’이 서울 서초구에 개관했습니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인기 건축가 ‘쿠마켄고’ 와 디자이너 ‘하라켄야’ 가 함께 참여하여 탄생한 공간으로,
그들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어떻게 공간에 녹아들었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박물관 방문객이 가장 처음 마주하는 곳은 박물관의 외관입니다. 최근에는 외관이 독특하거나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받곤 하지요. 이러한 이유로 많은 건물 혹은 박물관을 지을 때, 명성있는 유명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디움 박물관 역시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켄고’가 설계를 맡아 탄생했습니다.
쿠마켄고(隈研吾, Kengo Kuma)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켄고(隈研吾, Kengo Kuma)’는 도쿄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1990년 자신의 건축사무소 ‘켄고 쿠마 앤드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
그는 건축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인간, 자연, 문화, 지역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쿠마켄고의 건축적 조화는 소재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서 비롯되었는데, 거대한 콘크리트, 강철과 같은 인공 구조물보다는 목재, 대나무, 돌, 흙과 같은 자연의 재료를 활용하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박물관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강한 직선보다는 유기적인 곡선의 인상을 받았습니다.
건축의 외관이 알루미늄이라는 강한 마감재를 무질서하게 배치해 알루미늄 파이프들이 빛을 받아 반사되어
날씨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생동감 있는 흐름은 건물과 주변 환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자연의 일부처럼 녹아들어야 한다는 쿠마 켄고 의 건축 철학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외관을 지나 입구에 들어서면, 편백 향기가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이어 내부는 외벽을 따라 목재로 채워진 공간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외부의 차갑고 단단한 알루미늄과 대비를 이루며, 목재 특유의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박물관 내부는 안정감 있는 공간으로 자연스레 전환되며 내부 곳곳에 유리창을 통해 비추는 자연광으로 인해 내부와 외부가 경계 없이 연결되어 마치 자연과 공간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모든 전시를 다 돌아본 끝에 마주하는 청음 공간입니다. 전시를 끝으로 음악 감상 시간을 주는 곳 입니다.
하얀 천으로 뒤덮인 공간에서 음악을 감상하면서 이 공간은 마치 꿈에서 본듯하거나,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잠시 하얗게 펼쳐지는 장면이 연상되었습니다. 부드러운 패브릭으로 만들어진 공간 덕분인지 마치 모든 감각을 쏟아낸 후, 차분히 가라앉히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건축가가 공간의 구조를 설계를 한다면, 그 안에 담긴 모든 요소를 하나로 엮어내고, 이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가장먼저 시각적인 로고, 색상, 서체, 그래픽을 담은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정리하고 방문객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동선, 사이니지 전달 방식까지도 설계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서의 여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기 위한 이유입니다. 오디움의 모든 여정을 만든 중심에는 디자이너 하라켄야가 있습니다.
디자이너 하라켄야 (原 研哉, Kenya Hara)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국내에서 브랜드 무인양품(MUJI)의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여백의 미,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여백을 통해 본질을 드러내는 일본 전통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하라켄야만의 디자인 언어로 표현한다. 건축가 쿠마켄고와 공통점으로 모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하라켄야는 비워진 공간과 여백을 통해 자연스러운 감각과 흐름 속에서 브랜드 또는 공간의 의미를 전달한다.
하라켄야의 디자인 철학인 ‘단순함'은 오디움의 심볼에도 반영되었습니다. 박물관의 주된 소장품인 스피커를 형상화하여 ‘소리를 듣는 공간’ 임을 직관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타이포그래피와 색상의 사용에 있어서도 장식적인 요소나 화려한 컬러를 배제하여 ‘절제된 단순함’을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라켄야만의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표현은 박물관 곳곳에서 경험하는 모든 감각을 깨우며 관람객이 전시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오디움 박물관에서 단순한 심볼 표현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확장성을 효과적으로 적용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 정문의 조형물을 비롯해 사이니지, 심볼에 애니메이션 효과가 들어가 소리 움직임을 전달하는 웹사이트, 평면 인쇄물, 굿즈 등 다양한 매체에 동일한 시각 요소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관람객이 박물관에서 만나는 지점 어느 공간에서든 통일된 브랜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상징을 넘어, 하라 켄야가 추구하는 브랜드가 지닌 철학과 정체성을 사람들의 경험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디움 박물관은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완벽한 공간으로 탄생했습니다.
각기 다른 철학을 지닌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프로젝트로 완성해낼 수 있었을까요?
특히 브랜드를 만드는 디자이너 입장에서 브랜드의 방향이나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 간의 논의 과정에서
어떤 태도와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서로 다른 영역의 경계에서 무엇을 지키고 어디까지 타협해야 하는지, 저역시도 늘 숙제처럼 따라다니던 고민입니다. 쿠마켄고와 하라켄야의 오디움 프로젝트를 살펴보며, 디자이너와 건축가는 어떻게 협업해야 조화롭고 완벽한 결과물에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쿠마켄고와 하라켄야의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단순한 미니멀리즘'이라는 공통된 철학 아래 완벽한 오디움 박물관이 탄생한 것처럼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처음 협업을 할 때는 공통의 목표를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과정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지, 그 공간이 관람객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지 논의합니다.
2. 누가 어떤 영역을 주도할지 역할을 정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건축가는 구조, 법규, 배치, 채광 등을 설계를 담당하고 디자이너는 색상, 소재, 가구배치, 관람객 흐름을 파악합니다. 업무가 겹치는 부분은 (예로 조명, 재료 선택) 사전에 합의가 필요합니다.
3.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정합니다. 정기 회의는 언제 할 것인지, 피드백은 어떤 식으로 전달하는지, 도면이나 디자인 스케치와 같은 자료 공유는 피피티로 해야 할지 피그마로 해야 할지 등 업무 도구를 선택합니다.
4. 공동의 레퍼런스 수집합니다. 이는 디자인 언어를 통일하기 위한 작업으로 이미지 자료와 레퍼런스 사례들을 수집하여 무드 보드나 스타일 가이드를 정의한 뒤, 기본 형태가 갖춰진 이미지 프레임을 만듭니다.
앞서 방향성이 정해졌다면, 실제로 공간과 브랜드 요소를 구현 가능한 형태로 디자인하는 단계를 거칩니다.
쿠마켄고는 공간 설계에 필요한 건축 구조, 재료를 자연과 함께 스며드는 요소로 탐구했고,
하라켄야는 박물관의 심볼, 색상, 서체 등의 전반적인 시각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만들어진 형태를 어디까지 적용 가능한지 고려하여, 형태를 구체화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야기하자면, 디자이너는 로고가 어떻게 설치될지, 사인물의 재질이나 위치는 어떤지, 브랜드 컬러가 조명과 어떻게 어우러지는 등 설계하고 건축가는 구조, 설비, 재료, 조명 계획 등을 반영하여 도면과 3D모델을 개발하고 브랜드 디자인 요소들이 공간 내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기능적으로 또는 현실적으로 조율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실제 적용 가능한 현실성, 시공성 등을 중점적으로 판단하도록 합니다.
관람객들이 공간에 들어오면 복합적인 경험들을 마주하며 많은 감각 정보를 받아드리게 됩니다.
이러한 복잡한 감각을 하나로 맞추기 위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관람객들이 공간 안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공간의 정체성이 담긴 결과물이 하나로 이루어졌을 때, 관람객들은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지요. 이 단계에서 서로 의견이 충돌할 때는 주관적인 의견은 내려놓고, 이 건물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도록 만들까 라는 관람객 중심의 생각에서 합의점을 찾습니다. 건물과 디자인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관람객들에게 까지 일관성있게 도달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출발하지만,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으로 조화롭게 연결해야 합니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관람객이 느끼는 감정, 동선, 리듬 통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이미지가 형성되고,
공간에 벗어난 마지막에는 “아 이 공간은 이런 곳이구나” 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만들어진다면, 입체적인 브랜드가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디움 박물관은 시각, 냄새, 향기, 빛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어우러져, 일방적으로 시각적 관람만 하는 기존의 조용한 박물관을 넘어서 관람객들이 몸소 체험하고, 느끼는 감각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곳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