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년 동안의 대학원 생활과 최종 시험을 마무리했다. 3년의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간이었다. 몇몇의 가족들, 지인들과는 사별의 아픔을 겪었고 가장 사랑했던 강아지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임대차 사기를 당해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어 친구 집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들어간 기숙사에서 만나 동고동락했던 단짝 룸메이트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혼자 기숙사를 쓰며 큰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과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나고자 했으나, 그럴 여유가 없어 번번이 연인관계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는 해도 매일 8시부터 12시까지 공부해야만 했기에 감정들을 온전히 소화할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그렇게 공부해도 성적표를 보기 전 매번 덜덜 떨어야 했을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몇몇 동기들은 미리 원하는 직장을 얻기도 했으나 끝까지 좋은 회사에 채용되지 못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학생회 임원, 학회장, 인턴, 경시대회, 논문작성이라는 활동들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이 성장했다고 해도 한 달 동안 5kg가 빠질 만큼 큰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슬픔, 허전함, 공허함, 외로움, 열등감, 중압감 등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깊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했다. 최종 시험에 떨어진다면 이런 생활이 1년 연장될 것 같았다. 시험은 총 8과목이고, 그중 7과목은 객관식, 사례형, 기록형이라는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중요한 문구들은 답안지에 그대로 현출 할 수 있도록 암기해야 했고, 지엽적인 내용들은 객관식을 위해 알아두어야 했다. 그래서 시험을 마무리하는 한 달 동안, 침대 머리맡에 항상 암기할 것들을 두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외우기 시작해서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외웠다. 상대적으로 투자할 시간이 없는 과목들은 학교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양치하는 시간 모든 시간을 쪼개서 익숙해지도록 암기했다. 공부할 게 많아 밤을 새웠는데 다음 날도 잠이 오지 않아 50시간 넘게 깨어있으면서 생존의 공포를 느끼고는 억지로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간 매일 8시 반부터 2시 반까지 18시간을 학교와 독서실에서 보냈다. 그러고는 4일간 시험을 응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긴장감에 한숨을 쉬거나 다리를 떨거나 중얼거리는 등 이상행동을 했다. 모두가 각자마다 힘든 시간과 순간들을 경험하고 있었다. 내게는 시험을 마치고 객관식 점수를 매기는 것이 마지막 관문이었다. 객관식은 모의고사에서 하위권이었기에 매기기 전까지 몇 시간을 고민했고, 매기는 순간에도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다행히 객관식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아 안정적인 합격을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항상 ‘적당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생 때는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시험기간에도 12시만 되면 집에 간다고 신데렐라라고 불릴 만큼 시험 기간에 잠을 줄여본 적도 없었다. 부정적인 감정들과 힘든 일은 최대한 피하려고 애썼다. 쉽지만 성취감을 주는 일들을 찾아다녔고, 책임감이 필요하거나 힘들어 보이는 일이 있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대학원 생활과 시험은 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껏 회피하면서 살아왔던 모든 감정들을 겪어야 했기에 누구보다도 힘들었다. 치열하고 처절했다.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피하지 않고 그 순간들은 온전히 겪어낸 지금은 그렇게 살아온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입학했을 때와는 법학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달라진 것을 느낄 만큼 실력적으로 성장했다.
또한, 마지막 20대를 무언가를 얻기 위해 피하지 않고 치열하게 보냈던 순간들이 앞으로 있을 30대의 나의 순간들을 다잡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완전하고 성숙하지 못했던 시간들은 내가 살면서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는 무엇일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지, 어떠한 태도로 나의 직업에 임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다. 나의 가치에 우선순위가 생겼고, 사람과 직업에 대한 태도가 진지해졌다. 불온전한 20대의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30대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30대는 좀 더 나다워지기를, 삶에 보다 진지하고 성숙한 태도로 임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