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종이 앞에 선 나: 첫 자기소개서의 기억
서른 살,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하얀 문서, 깜빡이는 커서, 그리고 그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나.
"자, 이제 뭐라고 써야 하지?"
7년.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 걸까.
부서를 옮겨 다니며 이것저것 해본 것 같은데, 정작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가 없었다. 역할로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도 없었고, 나 자신을 탐구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화면을 노려보다 결국 인터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 잘 쓰는 법', '이직 성공 자기소개서 예시'... 검색어를 입력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남의 이야기를 베껴 쓰는 것 같아서? 아니, 그보다는 내 이야기를 쓸 줄 모르는 내가 한심해서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써야만 했다. 매일 아침 고객 불만으로 시작되는 하루, 한 달에 한 번씩 밀리는 월급...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이 난관을 넘어야만 했다.
"우선 기본 정보부터 쓰자."
이름, 나이, 학력...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특기와 장점을 적는 칸에 다다르자 또다시 멈춰 섰다.
"나의 특기? 장점?"
머릿속이 하얘졌다. 7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내세울 것이 없을까? 아니, 어쩌면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고객 불만을 처리하면서 길러진 인내심,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며 얻은 폭넓은 시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7년을 버텨낸 끈기...
"이런 것들도 장점이 될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쓰다 보니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겪은 일들, 극복한 어려움들... 그 모든 것이 나를 만들어온 과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밤을 새워 첫 자기소개서를 완성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라는 사람을 조금은 담아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며 던졌던 질문들 -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잘하는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 이 질문들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앞으로 내가 겪게 될 많은 변화와 도전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복잡해질 것이었다.
빈 종이 앞에 선 그 날, 나는 단순히 이직을 위한 글을 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나희쓰'라는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줄은,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