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김태희가 밭 갈고 전지현이 소 모는데?

우즈베키스탄을 가다 #1

by 라이프파인

"우즈베키스탄? 거긴 김태희가 밭을 갈고 전지현이 소를 몬다며?"


'우즈베키스탄으로 출장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동시에 "러-우 전쟁이나 중동 정세 때문에 지금 위험하지 않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습니다.


최근 태양광 에너지 관련 ODA 사업 발굴 차 우즈베키스탄에 2박 4일의 짧은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20년 이상 거주하신 한인회장님, 기업가, 대사님 등을 예방하며 짧게나마 우즈벡의 진짜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image.png 우즈벡 타슈켄트 TV 타워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


중앙아시아의 맹주라 불리는 우즈벡, 그곳에 가는 건 처음이었기에 나름대로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지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우즈벡은, 우리가 흔히 품고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이 와장창 무너지는 아주 흥미롭고 역동적인 나라였습니다.


1. 130여 개 민족이 공존하는 실크로드의 중심

우선 첫 번째 오해부터 풀자면, 과거 '미녀들의 수다'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남긴 강렬한 인상 때문에 우리는 우즈벡을 단편적으로 '미녀의 나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이 땅에는 무려 130여 개의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토록 다채로운 민족이 공존하는 국가를 '예쁘다'는 주관적인 잣대 하나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mage.png KBS '미녀들의 수다'의 구잘, 사진출처: KBS


위험할 것이라는 두 번째 오해 역시 기우였습니다.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DNA가 남아서일까요? 우즈벡은 무서울 정도로 정교한 '실용주의 외교'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에 가스를 수출하면서도 우크라이나와 경제적 협력을 논의하고, 최근에는 이란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모든 국가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국의 실익을 챙기는 줄타기 외교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image.png 과거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던 우즈벡, 지도에서도 유럽과 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한다


2. 소련의 유산, 계획 도시

우즈벡 수도 타슈켄트의 거리를 걷다 보면 굉장히 이색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66년 대지진 이후 소련이 계획적으로 도시를 재건한 탓에,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고 공공건물들은 과거 사회주의 시절의 웅장한 기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image.png 타쉬켄트의 밤거리, 요 몇년사이 차가 더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찻길이든 거주지든 가리지 않고 툭툭 튀어나와 있는 '노란색 가스 파이프'입니다. 국가 에너지의 대부분을 가스에 의존하다 보니 생겨난 독특한 풍경인데, 차량의 대부분이 천연가스(CNG) 등으로 개조되어 굴러다니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에너지 관련 이야기는 <3편 태양광 편>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image.png 길을 걷다보면 보이는 노란색 가스 파이프라인


현재 타슈켄트는 거대한 공사장 같습니다. 대졸 초임이 500달러(지방은 3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지만, 부동산 시장의 열기는 지표를 뛰어넘습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타슈켄트 시내의 주택 가격은 1년 만에 무려 41%나 급등해 제곱미터당 약 1300달러을 기록했습니다. 도심 곳곳에는 제곱미터당 2,000달러 이상 호가하는 신축 건물들이 앞다투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image.png 타쉬켄트 수도의 밤 거리, 꽤 높은 건물들이 최근 건축되었다


반면, 시르다리야나 부하라 같은 지방 도시들의 집값은 오히려 16~20%가량 하락하며 뚜렷한 도농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즈벡 정부가 비옥한 동쪽(페르가나 분지)과 척박하고 가난한 서쪽 지역 간의 격차를 줄이고 농업 용수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양극화를 해소하고 국가 전체의 역동성을 끌어올리기 위함입니다.


3. 한국형 '발전 모델'을 꿈꾸는 청년들

우즈벡의 도로를 메운 차량의 90%는 쉐보레 마크를 달고 있습니다. 과거 '대우자동차'가 심어놓은 자동차 산업의 뿌리가 이어져 온 것인데, 이는 고스란히 '한국'에 대한 강력한 신뢰로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 신뢰는 '교육'과 '농업' 현장으로 이어집니다. 전국 8개소의 세종학당과 한국어 교육원에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줄을 잇습니다. 이들에게 한국은 단순히 K-드라마 속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닮고 싶은 발전 모델'입니다. 농업 현장에서는 한국 농촌진흥청이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을 통해 고품질 쌀 종자를 보급하며 농업 혁명을 돕고 있습니다.


image.png 지평선이 보이는 토지에 작물을 키우는 모습


다만 일반적인 농업 현장에서는 수확을 내더라도 저온 창고나 선별, 포장 시스템 같은 물류 인프라가 낙후되어 제값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의 유통 및 물류 기업, 더 나아가 다양한 산업군에게 이곳이 엄청난 '기회의 땅'임을 시사합니다.


주 6일제를 운영하며 주말도 반납한 채 성실하게 일하는 국민성, 그리고 최근 여성 인권 향상에 힘쓰기 시작한 사회적 변화를 보며, 우즈베키스탄이 중앙아시아의 진정한 맹주로 거듭날 것임을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며,


화려한 재개발 현장과 K-드라마/K-팝 인기 이면에는,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 될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는 비극 속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불굴의 저력으로 황무지를 개간해 쌀 생산량을 기적처럼 끌어올렸고, 우즈벡의 국가 농업 목표치마저 단숨에 높여버렸습니다. 130여 개의 다민족 중 단연 '으뜸'이라 칭송받으며, 우즈벡 국가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인정받은 위대한 개척자들입니다. 그러나 9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소수민족으로 타슈켄트 시장 한구석에서 김치와 나물을 팔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핏줄, '고려인'입니다.


다음 2편에서는 고려인들의 먹먹하고도 자랑스러운 역사와 더불어, '아리랑 요양원' 어르신들의 뭉클한 사연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BTS 컴백이 던지는 사랑과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