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그들은 누구인가

우즈베키스탄을 가다 #2

by 라이프파인

지난 편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오해와 현실의 모습을 들여다봤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우즈벡에 살고 있는 우리 핏줄, '고려인'들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가 왜 이들을 이해하고 또 기꺼이 도와야 하는지, 그 가슴 시린 역사와 현재의 협력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 1937년의 비극, 그리고 황무지에 피워낸 '기적'

1937년 가을, 소련의 스탈린 정권은 가혹한 강제이주 정책을 펼칩니다. 일본의 첩자 활동을 막는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연해주에 살던 17만 명이 넘는 한인들을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어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내버렸습니다.


image.png 출처: 서울신문, 강제이주 80년 세월 흘러도…


그중 약 7만 7천여 명이 우즈벡 땅에 버려졌습니다.


강제이주 과정에서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과 혹독한 추위 속에서 수많은 노인과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땅을 파서 토굴집을 짓고, 특유의 불굴의 저력과 근면함으로 갈대밭을 개간해 벼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김병화 집단농장'입니다. 고려인들은 기적처럼 쌀과 목화 생산량을 끌어올렸고, 우즈벡의 국가 농업 목표치마저 가뿐히 뛰어넘었습니다.


이는 우즈벡의 전통 음식 '플롭(Plov)'의 대중화와 국가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130여 개 다민족 중 단연 '으뜸'이라 칭송받는 위대한 개척자들이 된 것입니다.


현재 우즈벡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약 18만 명으로, 독립국가연합(CIS) 및 중앙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 이면에는, 9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타슈켄트 시장 한구석에서 김치와 나물을 팔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소수민족 고려인들의 서글픈 현실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2. 우즈벡과 한국의 교감, '아리랑 요양원'의 탄생

어른을 공경하고 가족을 중시하는 정서, 우리와 참 많이 닮은 우즈벡은 한국과 빠르게 친밀해졌습니다. 이 특별한 인연은 고려인 1세대를 위한 따뜻한 보금자리 건립으로 이어졌습니다.


2006년, 당시 한명숙 국무총리와 우즈벡의 미르지요예프 총리(현 우즈벡 대통령)가 만나 고려인 독거노인을 위한 요양원 설립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우즈벡 정부가 부지와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이 운영을 맡아 2010년 마침내 중앙아시아 최초의 무료 요양시설인 '아리랑 요양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image.png 아리랑요양원 전경


타슈켄트 인근 강제이주 첫 정착지였던 '시온고 마을'에 위치한 이곳에는 현재 37명의 고려인 1세대 및 독거 어르신들이 입소해 계십니다. 평균 연령 84세, 대부분이 1937년 강제이주 전후로 태어나 평생을 가난과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아리랑 요양원에서는 이분들을 위해 24시간 맞춤형 돌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선 전담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여 매일 혈압과 당뇨 등 기초 건강을 체크하고, 물리치료와 안과 및 치과 진료 연계, 투약 관리 등 세심한 의료 및 건강 서비스를 지원합니다. 또한 어르신들의 입맛에 맞춘 한식과 김치를 포함해 하루 네 끼의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며, 쾌적한 2인 1실 주거 환경과 목욕 봉사를 통해 안락한 생활을 돕고 있습니다. 나아가 종이접기, 노래교실, 산수교실 등 치매 예방 프로그램은 물론, 대학생 봉사단과의 말벗 활동, 생신 잔치, 그리고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는 장례 지원까지 정서적, 행정적 돌봄을 아끼지 않으며 어르신들의 남은 여생을 존엄하게 지켜드리고 있습니다.


3. 일방적 원조를 넘어선 '보은'의 ODA

한국의 지원은 요양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의료/교육 봉사, KOPIA(농촌진흥청)의 농업 기술 전수 및 김장 지원, 그리고 여러 한국 기업들의 CSR(사회공헌활동)을 통한 학교 시설 개보수 등 다방면의 협력 사업이 우즈벡 곳곳에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우즈벡을 돕는 것은 단순히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돕는 일방적인 요식행위가 아닙니다. 1937년, 낯선 땅에 버려져 얼어 죽어가던 우리 핏줄 고려인들에게 기꺼이 빵을 나눠주고 품을 내어주었던 우즈벡 사람들에 대한 '보은(報恩)'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국제 개발협력이라는 거창한 단어나 문서조차 없던 시절,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연대했던 숭고한 역사에 대한 화답인 것입니다.


4. 내일을 향한 도약, 그리고 신재생 에너지

우즈벡은 과거의 상처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1990년대 구소련 붕괴 이후에도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통해 견고한 경제 성장률을 유지해왔습니다. 2024년 기준 1인당 GDP는 약 2,500달러를 넘어서고 있으며, 인간개발지수(HDI) 분류상 상위권(High)에 해당하는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중위권 개도국입니다. 카자흐스탄과 더불어 중앙아시아의 핵심 경제권으로 평가받고 있죠. 최근 우즈벡 정부는 국가 인프라의 현대화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신재생 에너지' 전환에 막대한 니즈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를 직접 돌아보니 훌륭한 비전 이면에는 기술적, 자본적 현실의 벽이 존재했고, 국제사회의 세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1~2년 전 진출했던 중국 기업들이 무늬만 태양광인 부실 시공을 진행한 데다, 사후 유지보수(A/S)마저 전무해 고장 난 설비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즈벡 현지에서는 고품질 시공 능력과 철저한 사후 관리 역량을 모두 갖춘 한국 기업(당사)의 진출에 강력한 기대감을 표명하며 환영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우즈벡의 현 에너지 실정을 짚어보고, 한국의 태양광 설비 및 기술을 바탕으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친환경 ODA 기획 방안'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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