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인간의 본능에 관하여

by 라이프파인

《팩트풀니스》를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저자(한스 로슬링)가 자신을 ‘가능성 옹호론자’라고 소개한 대목이다. 나는 이 표현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소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고, 합리적 사실(팩트)로 판단하는 편이다. 데이터와 팩트 위주로 현상을 파악하고, 현상의 기저에는 그 원인과 이유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원인을 알면 그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도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내가 지난 10여 년간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여기가 나의 이 분석적 성향과 문제 해결자로의 역할이 가장 발현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합리적으로 원인을 파악하고, 협력과 소통을 통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저자는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나 비관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데이터를 보면 세상은 점진적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과거의 낡은 지식이나 인간의 '본능'에 갇혀 세상이 나빠지고만 있다고 착각할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이 본능들을 인지하고 사실에 근거해 세상을 바라볼 때, 진정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격려한다.

이 글에서 《팩트풀니스》에서 말하는 10가지 본능을 나열하며,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간극 본능: 세상을 양극단(예를 들어, 빈자와 부자, 선진국과 개도국)으로 나누어 바라보려는 본능이다. 개발협력 분야에 근무하며 이 지적에 매우 깊이 공감했다. 흔히 빈과 부로 세상을 나누지만, 현실은 그렇게 이분법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극단이 아닌 '중간'에 분포한다.

2) 부정 본능: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희망적 통계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보려는 본능이다. 언론은 끊임없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보도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 나쁜 소식 이면에 존재하는 점진적인 개선을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3) 직선 본능: 인구 폭발이나 자원 고갈 등 어떤 현상이 일직선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단정하는 본능이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지표는 S자 곡선, 낙타 혹 곡선, 미끄럼틀 곡선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단편적인 추세 연장이 아니라, 상황을 형성하는 복합적인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4) 공포 본능: 미디어가 보여주는 예외적이고 자극적인 위험에 압도되어 실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본능이다. 진화의 산물인 '공포'라는 감정과 실제 '위험성(위험×노출 정도)'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공포에 사로잡히면 팩트를 볼 수 없으므로,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현실적인 위험 요소를 분석해야 한다.

5) 크기 본능: 숫자 하나만 보고 그 크기를 과대평가하는 본능이다. 저자는 단일 수치를 경계하고 반드시 '비교'하고 '나누어(비율)' 볼 것을 권한다. 예를 들어 특정 사고 하나가 크게 보도되면 그것이 전 세계적 위기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데이터를 비교해 보면 상황을 다르게,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6) 일반화 본능: 소수의 사례를 가지고 전체를 무의식적으로 범주화하는 본능이다. "아프리카는 가난하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아프리카에는 50개가 넘는 국가가 있고, 그 안에는 부호도, 중산층도 존재한다. 단지 국가 전체의 평균 GDP가 상대적으로 낮을 뿐이다. 편견을 깨고 내 범주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7) 운명 본능: 타고난 특성 때문에 사람이나 국가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본능이다. '저 국가는 예전부터 가난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늦어 보일지라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으며, 더딘 변화도 분명한 변화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8) 단일 관점 본능: 자신이 잘 아는 한 가지 전문 지식이나 관점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본능이다. 이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좁힌다. 내가 익숙한 분야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 생각의 허점을 점검하며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9) 비난 본능: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복잡한 시스템의 결함을 분석하기보다, 비난할 희생양(개인이나 집단)을 찾으려는 본능이다. 단순한 비난은 문제 해결이나 재발 방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에게 죄를 묻기보다 원인이 얽힌 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

10) 다급함 본능: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쫓겨 분석적 사고를 멈추는 본능이다. 저자는 이 본능을 억제하고 데이터에 기반해 진짜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것을 당부하며, 우리가 대비해야 할 5대 위험으로 '세계적 유행병, 금융위기, 3차 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을 꼽았다.

놀랍게도 이 책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COVID-19)'가 전 세계를 덮쳤고, 현재도 러-우 전쟁, 중동 갈등 등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지정학적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저자의 통찰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는 르완다에서 극도의 빈곤층을 지원하는 ODA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그들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을 살고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뛰었다.

그 과정에서 농촌 지역이 직면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체감했고, 그 경험은 이어져 현재 태양광 에너지 회사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를 연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안에 세상을 왜곡해서 보게 만드는 10가지 본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막연한 낙관론이 아니라 데이터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내가 개발협력 현장에서, 그리고 지금 기후/에너지 분야에서 하는 일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며 세상의 진보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가능성 옹호론자'로서, 사실에 충실한 팩트풀니스의 시각으로 내가 속한 곳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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