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으면 바뀐다
고향이 바다를 끼고 있어 어려서부터 생선을 많이 먹었다. 외갓집도 바다와 접한 마을이라서 어른들로부터 바다와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생각나는 재미있는 얘기 하나가 있다. 생선은 먹는 방법과 관련된 얘기다. 생선 먹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자. 생선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젓가락질을 볼 수 있다.
먼저, 그냥 쑤셔 파는 스타일. 이런 타입은 한번 젓가락질을 할 때 그 효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열심히 노력해서 꾸준히 파먹는 스타일이다. 한쪽을 먹고 나서 다시 다른 쪽을 파기도 하고 대충 먹다가 끝내기도 한다. 보통 남은 생선살이 많은 타입니다.
두 번째는 나름 열심히 생선뼈를 먼저 발라내는 종류이다. 생선살을 많이 모은 뒤 한 번에 먹겠다는 심산이다. 노력파들은 생선살을 발라내어 숟가락에 밥처럼 올려 먹기도 한다.
마지막은 한쪽 생선을 먹고 나서 반대쪽을 먹기 위해 생선을 뒤집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난 어릴 때 생선을 뒤집지 말라는 얘기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바다에서는 생선을 뒤집는 것은 일종의 금기이다. 배가 전복되는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비단 생선뿐만이 아니다. 어촌, 바닷가 마을에는 유독 여자들의 비율이 높다. 할머니 혼자 사는 집들도 많다. 지금처럼 일기예보가 정확하지 않고, 고깃배의 안전성이 떨어지던 시절 배가 뒤집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생선도 뒤집어서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쪽을 먹을 때는 뼈를 드러낸 뒤 다시 그 밑에 있는 살들을 공략한다.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뒤집어질 수 있음을 중시하는 것이 바로 주역이다. 주역의 64 괘는 뒤집힘의 연속이다. 양은 음으로 바뀌고, 음은 다시 양으로 바뀐다. 양효는 음효로 바뀌고, 음효는 양효로 바뀐다. 6개의 괘는 양에서 음으로, 음에서 양으로 바뀌고 아예 정반대로 뒤집어지기도 한다. 주역에서 뒤집는 방법은 2가지다.
먼저, 종이를 접듯 위와 아래를 통째로 뒤집는 방법이다. 주역의 64개 괘사는 12, 34, 56, 78 이렇게 모두 2개씩 짝을 지으면 32개로 나뉘어볼 수 있다. 3과 4, 5와 6, 7과 8... 63과 64괘까지는 모두 앞의 괘와 그것을 위 이 뒤집어진 괘가 연달아 나온다. 단, 6개 효가 모두 양인 첫 번째 중천건과 모두 음인 두 번째 중지곤만 뒤집어도 괘가 바뀌지 않으므로 예외다. 3번째를 뒤집어 4번째 괘, 5번째를 뒤집어 6번째 괘가 나오는 식이다.
두 번째로 뒤집는 방법은 양을 음으로, 음을 양으로 뒤집는 방법이다. 정확히 반대의 괘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양양음양양'의 10번째 '천택리'괘와 '음음음양음음'의 15번째 '지산겸'괘는 정확히 음양을 반대로 바꾼 괘이다.
주역에서 뒤집힘이 중요한 것은 정확히 반대의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뒤집을 때 그 풀이는 어떻게 될까? 위와 아래를 뒤집을 때와 양과 음을 뒤바꿀 때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자세히 분석해보면 나름의 공통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영원한 것은 없는 만큼 항상 반대를 생각해야 한다. 주역은 모든 상황에서 항상 이게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영원히 좋은 것도 영원히 나쁜 것도 없다. 주역은 사람 사는 인생을 64괘를 통해 이미지화하고 형상화해서 설명한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64괘를 통해 설명한다. 정답이 없는 만큼 공자의 풀이가 다르고 정약용의 해석이 다르다. 다만 그 중심을 파고드는 현상을 이해한다면 얼마든지 내가 적용해볼 수 있다.
동양에 주역이 있다면 서양에는 타로가 있다. 64괘가 아닌 78장의 카드를 통해 현상을 풀이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미래의 운을 예측해보는 서양의 점성술이다. 22장의 메이저 카드와 56장의 마이너 카드로 나뉘어 있다. 메이저 카드와 마이너 카드는 숫자와 그림을 통해 각각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설명이 다르기는 하지만 타로에서도 소위 좋은 카드와 나쁜 카드가 있다. 좋은 카드는 좋은 결과나 미래를 나타내고 나쁜 카드는 상황의 좋지 않음, 경계의 의미를 많이 나타낸다. 보통 타로는 금전이나 인간관계, 일이나 직업 등의 고민이 있을 때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타로 카드가 있고, 어떤 종류의 고민이나 미래를 예측하고 설명하는데 최적화된 그림이나 형상이 있는 카드가 있다. 그래서 타로이스트들마다 쓰는 카드의 종류는 다양하다.
타로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있지만 여기서는 뒤집힘에 대해서만 얘기하기로 한다. 타로에서는 뒤집히는 것에 특히 의미를 두는 카드가 있다. 유니버설웨이트 타로를 사용하면서 카드를 뽑았는데 뒤집어져 있다면 정확히 그 위미가 반대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다른 타로 카드를 사용하더라도 카드의 의미를 해석할 때 반대의 경우를 조심할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가령, 리나쉬멘토 카드를 사용하면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카드가 나왔다면 좋은 의미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볼 것을 권유하는 해석이다.
타로 카드를 해석할 때 좋은 카드가 영원히 좋은 것만은, 나쁜 카드가 영원히 나쁜 것만은 아닌 이유는 바로 이 같은 해석 때문이다. 그 핵심은 뒤집힘이다.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문제가 풀린다. 소위 용하다는 타로점이나 타로의 대가들이 무슨 신성한 능력이 있어서 나의 고민을 풀어주고 나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아니다. 타로점에서 용함의 핵심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고민자에게 알려주고 운을 바꿀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It ain't over till it's over"라고 한다. 스포츠에서 많이 접하기도 하는 말이다. 197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꼴찌를 달리던 뉴욕 메츠가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을 때 감독이었던 요기베라가 했던 말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동양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종지이부종료(終至而不終了)" 삼국지에 등장하는 사마의가 했던 말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의미는 끝나지 않았다면 끝난 것이 아니다. 결국 같은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가 언제였던 장소가 어디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아직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그 의미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다가도 나빠지고, 나쁘다가도 좋아지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많이 볼 수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것은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인간의 운명 때문이다. 인생의 중반전이라면 아직 반이나 남은 만큼 더 열심히 살 일이다. 기회가 남아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면 이제 내려놓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주역과 타로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많은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다. 주역과 타로의 공통점은 이밖에도 많다. 운명을 논하는 동서양의 학문은 절묘하게 닮아있다. 없어지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