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운명
요즘 개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징크스나 심리적인 요인이 많이 좌우하는 스포츠계에는 개명 열풍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이름을 바꾼 선수들이 그 이후에 성적이 나아지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야구에 관심이 많은 나는 개명하는 선수들과 관련된 기사를 꼼꼼히 검색해봤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공교롭게도 개명 전과 후에 실력이나 그 결과가 달라진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성명학(姓名學)이란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성과 이름을 가지고 이치를 따져보는 학문이다. 이름(정확하게는 성까지 포함된다)을 가지고 한 사람의 운명을 풀이해보고 미래를 예측해보는 일종의 운명학이다. 포털 사이트에 성명학을 검색하면 대부분 작명소가 따라 나온다. 이름 짓는 곳이다. 과거에는 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집안의 어른들(할아버지는 어디선가 손자의 이름을 지어오신다)에 의해 손자의 이름이 결정되곤 했다. 성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 역시 거의 대부분 2자에 불과한데 소위 '돌림자'라고 해서 중간이나 끝의 한 자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경우 중간이나 마지막의 한 자를 위해 우리 할아버지와 부모들은 그렇게 작명소를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명학에 대해 관심이 없다. 이미 태어났을 때 내 이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의심 없이, 이유 없이 누가 부르면 대답했고, 출석부에 이름을 남기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이름을 쓰고 얘기한다. 성명학이라면 왠지 고리타분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부르고, 불리는 단어 가운데 이름만큼 내 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있던가? 사람에게 이름이 있다면, 기업이나 회사에도 나름의 이름이나 로고가 있다.
CI(Corporate Identity)에 공을 들이는 기업들이 많다. 예산을 투입하고 광고에도 열심이다. 왜 그런가?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이름을 바꾸고, 로고를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히 이름을 바꾸거나 CI를 바꾼 기업이 그 전보다 잘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유는 뭘까?
이름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건 결혼한 뒤 장인어른을 통해서다. 사실 그 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주어진 대로 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장인이 손수 이름 짓는 것에 공을 들이신 이유는 손주들이 태어나면서부터다. 아내의 형제들은 3녀 1남이다. 자식들의 이름은 작명소나 종교인들을 통해 지었다. 그랬던 자식 한 명의 이름을 바꾸셨다. 나름의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인은 손주들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하셨다. 장인이 성명학을 중시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이름으로 내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운명대로 이름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의 사주를 보고 이름을 보면 이름이 꼭 좋지 않은 사주대로 지어진 경우가 많다. 결국 그걸 무시할 수 없다. 운명을 바꾸려면 자신도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만, 이름을 바꿀 것을 진지하게 고민도 해야 한다."
장인은 주변의 가족과 친척들, 지인들의 사례를 통해 명리와 성명학과의 연관성이 어느 정도 맞는지 아직까지 확인하며 공부하고 계신다. 이름과 내 운명은 과연 어떤 관계인가?
명리학으로 볼 때 좋은 사주는 부족함이 없는 사주다. 크게 하나가 부각되는 것보다 골고루 다 가지고 있는 게 좋은 사주다. 사주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60 갑자 가운데 4개뿐이다. 결국 나머지 56개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다. 60 갑자는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로 분리해서 볼 수 있다. 나의 생년월일시에 있는 천간 4개와 지지 4개를 합쳐도 8개, 결국 천간 가운데 6개와 지지 가운데 8개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다. 사주에서 내가 가진 것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도 부족함으로 나타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안정된 직업운이 없는데 직업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면 벽에 부딪히게 된다. 오히려 세상과 나를 비관하게 된다. 무얼 해도 안된다며 자책하게 된다. 내가 힘들어진다. 결혼운이나 배우자 운이 없는데 사람 만나는 것에 너무 매몰되면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내 안에서 그걸 찾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 소개해 달라고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항상 똑같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알고 편안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항상 상대에게서 그걸 찾는 것이다. 사주에 재물운이 없는데, 돈을 벌려고 노력하면 결과는 암울해진다. 그런 사람이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투자한다고 시간을 들여봐야 결국에는 남는 것은 없을 수도 있다. 운이 좋아서 혹시 벌게 되면 감사하고 그다음에는 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돈 버는 재주가 있어서 벌게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족함은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본다. 개인적인 생각이자 비과학의 영역이다.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내가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두면 된다. 부모나 형제가 다행히 그런 사람이면 가까이 있으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생의 반려자인 배우자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나랑 잘 맞아서 결혼하게 됐다는 것보다 나를 채워주는 사람이나 내가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서가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주변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거창하게 풍수지리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다. 이사를 하면 된다. 핵심은 지금 있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내가 부족해서 잘 안되고 있다면 뭔가를 바꿔야 하는데 나를 바꾸는 것은 내 의지만으로 쉽지 않다. 운명을 움직일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환경의 도움을 얻으면 된다. 이사가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간혹 집안의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운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데 핵심은 같다. 환경을 변화시켜 나의 운을 바꿔보는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방법... 개명 이미 정해진 내 사주를 바꿀 수는 없다.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이름은 평생에 걸쳐 나에 의해서 또 타인에 의해서 가장 많이 말하게 되고 불리게 되고 쓰이게 되는 단어이다. 그런 만큼 나의 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어쩌면 사주를 가지고 태어나서 이름으로 인해 완성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볼 수 있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우리나라 성명학 대가들의 책을 많이 읽어보고 접하게 됐다. 이름을 짓는 분들을 직접 찾아가서 그 원리를 듣고 배우게 됐다. 사실 이름을 처음 짓는 작명은 오히려 쉽게 생각한다. 요즘에는 소위 유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이들의 이름에 쓰이는 한자나 한글이 제법 비슷한 경우도 많다. 어린 자녀나 아이들의 경우 당장 운명이나 사주의 결과라고 할 것이 나타나지 않는 만큼 작명이 잘못됐다고 느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개명을 생각한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것저것 해보고 마지막에 이름을 바꿀 것을 권유받기도 한다. 그럴 때 성명학에서는 이름에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 분석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수없이 많은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성명학에서는 평생운과 초년운, 중년운, 말년운을 나눠 풀이하기도 한다. 각자가 처한 나이와 처지, 문제에 따라 사주와 함께 고려해서 개명을 하기도 한다. 주변에 개명한 사람들의 사례를 앞으로 계속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에필로그.
과거에는 개명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이제는 어렵지 않게 개명을 할 수 있다. 법무사를 통하지 않고도 개명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자신의 처지에 맞게 잘 써서 내면 개명을 할 수 있다. 괜히 개명 무조건 통과되는 방법 등 마치 공식이 있는 것처럼 어렵게 갈 일이 전혀 없다. 법원의 판사도 인간이다. 한 개인이 어려움에 처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간판인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고, 그 이유가 합당한데 그걸 허락해주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단, 죄를 저질렀거나 범죄를 위하거나 이른바 돈세탁처럼 그릇된 이유로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이름 세탁은 철저하게 차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