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남을 이해하는 사용설명서
세상을 보는 창은 많다. 남을 보는 방법도 마찬가지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 도구 역시 마찬가지다.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어떤 창을 통해 보느냐에 따라 그 해답은 달라진다.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믿음에서 다양한 해법을 얻는다. 어느 정도 정해진 길도 있고, 예견된 방법(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은)도 주어진다.
많은 도구 가운데 비유로 대표되는 '상징'과 그건 이 상황이야라고 외치는 '유형 분석'의 창은 재미있다. 곧바로 답을 주기 때문이다. 전체 선택지가 있고, 그중에 어떤 한 상황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찾는 방법은 어렵지만 알고 나면 이해가 되고, 위안을 얻기도 한다. 시대와 역사, 동서고금을 통해 살아남은 방법들은 많다. 우리 주변에서 다양하게 범주화된 창을 만날 수 있다. 범주화(category)의 위력은 여기서 나온다.
인간의 혈액형은 4가지로 나누어진다. 물론 RH 플러스와 마이너스 구분이나, 많지는 않지만 A, B, AB, O로 구분할 수 없는 혈액형이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혈액형은 인간의 혈액 유형을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정확히 설명하면 A와 B형이 있고 없고로 나눈(범주화한) 것이다. A형은 B형이 전혀 없는 것, B형은 A형이 전혀 없는 것, AB형은 A, B형이 모두 있는 것, O형은 A, B형이 모두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혈액형이 범주화되기 전의 시기를 상상해보자. 애초에는 수없이 많은 혈액 유형이 있었을 것으로 당시 연구자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쳐 특징을 나누다 보니 크게 4가지로 끝난다는 지금의 결론이 난 셈이다. 만약, 인간의 혈액형이 100개 정도의 유형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걸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발견하지 못한 101번째 혈액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격을 알고 싶으면 사람의 성격 유형을 4가지 지표로 나눠 16개 유형으로 설명하는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이 있다. 칼 융의 심리학에서 유래했다는 MBTI가 만들어지고 난 뒤 다양한 분야에서 이 검사가 활용되고 있다. 이것도 유행이 있어서 최근에는 SNS를 통해서 몇 번씩 공유되기도 했다.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이성적이냐 비이성적이냐를 보는 판단과 인식 등의 척도로 나눠 심리 유형을 구분하는 것이 MBTI다.
신빙성이 얼마나 있느냐, 맞다 틀리다 여부를 떠나 MBTI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심리 검사에서 활용되는 이유는 모르는 어떤 사람을 파악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그나마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남녀가 처음 만나는 소개팅 자리에서 과거에는 혈액형을 많이 묻고는 했다. 물론 결론적으로는 혈액형이 그 사람의 성격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지는 여전히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
심리학에서는 혈액형과 성격이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가용성' 편향이라고 설명한다. '상관에의 착각'이라는데 사실 이 말도 어렵다. 쉽게 설명하면 나에게 친숙하고 내 생각과 일치하는 타인의 성격이 더 부각되고 그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요소로 자리 잡아가는 현상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즘에는 혈액형의 자리를 MBTI가 대체하고 있다고 한다. 보다 세분화되어 있고, 측정 도구(질문)에 의해서 대답한 사람의 행동 유형을 나눠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있는 모든 사람의 성격과 심리 유형을 단 4개의 지표로 구분해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MBTI의 범주화 묘미가 드러난다.
주역이다. 주역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64괘를 통해 설명한다. 64괘는 64가지의 현상과 의미를 담고 있다.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와 상징을 통해 설명하는데 사실 그게 더 어렵다.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주역을 풀이하고 설명해왔지만 쉽지는 않다. 수학공식처럼 A 상황에서는 A'를 보고, B 상황에서는 B'가 답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상징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어느 하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음(-) 양(+)과 하늘, 땅, 물, 불, 산, 연못, 바람, 우레의 성질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설명하는 주역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인정받았다. 주역은 공자의 전유물로만 생각되지만 MBTI의 토대가 된 칼 융에게는 물론 아인슈타인에게도 영감을 줬다. 과학은 세상의 이치을 나름대로 설명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럼에도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법칙은 우리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를 잘 모르겠고, 내 주변에 돌아가는 일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나의 미래가 그렇다. 나의 고민에 대한 원인과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역은 나름대로 해답을 주고 있다. 주역 64가지 창은 내 주변의 수천, 수만 가지 고민과 걱정을 분류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책 제본이 끊어질 때까지 수없이 봤다는 공자의 얘기를 믿을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하는 순간이 온다.
명리학은 10개의 창(천간)과 또 다른 12개의 창(지지)으로 60개의 조합을 만들어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목, 화, 토, 금, 수의 5가지 기운을 갑, 을로 나누어 내가 타고난 사주를 알 수 있다. 체질에도 쓰이고 한의학에서도 적용되기도 한다. 별자리는 12달의 구분과 비슷하게 12개의 별자리로 나눠 성격을 구분하기도 하고 운명을 예측한다. 타로는 22개의 메이저 카드와 56개의 마이너 카드로 주역처럼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고 고민을 풀고 해결한다. 금화와 성배(컵), 지팡이와 검(칼)이 주요 도구로 쓰인다. 이런 것들이 인류 역사와 함께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범주화가 틀렸다면 수정 보완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거나 사라졌겠지만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쉼 없이 달려온 40여 년의 세월 속에 20년 간의 직장 생활이 벽에 부딪혔고 한계에 실감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인간에 대한 믿음은 세상에 대한 실망으로 바뀌었고, 나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과 걱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민을 해결하고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종교를 갖고 주변 선배들이나 어른들을 찾아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인 해답은 나에게서 나온다.
공통된 것을 내가 뭔가 부족하다는 거다. 그게 내 사주에서는 불(火)이었다.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나이기에 그 이후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상념과 외부의 자극을 내 안에서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소화할 것은 소화하고, 남길 것은 남기는 작업 끝에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 마무리를 할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창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중에 하나를 골라 그걸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로 했다.
주역과 타로, 명리학은 닮아있다. 스토리텔링이 다를 뿐이다. 사용하는 도구와 표현 방식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령 돈 문제가 고민이다. 이 돈이 내 돈이 될지 궁금하다. 주역을 펼쳤다. 화천대유가 나왔다면 내 돈이 크게 될 일이다. 산천대축과 풍천소축은 명리학의 정재와 편재와 닮아있다. 고정적인 수입이 될지, 일확천금이 될지, 금방 새어나갈 운명인지 설명한다. 타로를 펼쳤는데, 펜타클(금화)이 나왔다면 일단 확률은 50%다. 펜타클(금화)이 있는 14개의 카드는 나의 재산운에 대해 해법을 제시한다. 내 돈이 된다는 최고의 카드도 있지만, 빚이나 손해가 될 운명의 카드도 동시에 있다.
영원히 좋은 것도 영원히 나쁜 것도 없다. 돈을 벌거나 잃는 것은 어느 정도 내가 하기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