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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Jun 16. 2024

차린건 없고 술 한잔 안하지만...

전문가보다 돋보인 기안84의 '솔직 토크'

아무렇게나 진행하는 것 같지만...

김희민, 기안 84를 처음 봤을 때 많이 불안해 보였다. eye contact이 없는... 상대와 말을 할 때 시선을 맞추고 대화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소심하고 조심스럽게 내뱉는 스타일이었다. 만화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뒤늦게 본인의 과거를 얘기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는 걸 알게됐다.


그런 기안84는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 최적화된 캐릭터였다. 그림을 그려도, 마라톤을 해도, 혼술을 해도 심심해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나와는 많이 다른 기안84의 ‘복학왕’보다도 인간 기안84에 먼저 빠져들게 됐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마치 '기안84에 의한' '기안84를 위한' 최적화 예능이었다. 울림이 있는...


상대방과의 대화를 힘들어하는 것 같은 기안84가 연예대상을 받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캐릭터가 되더니 이제는 유튜브를 통해 1대1 대화를 하는 콘텐츠를 시작했다. 유튜브 콘텐츠에서 많이 볼 수 있는 1대1 대화형 콘텐츠라 뭐가 다른지 몇 시간을 봤다.


기안이 유튜브를 통해 인터뷰에 나섰다. 거침없는 인터뷰는 생각보다 즉흥적이었다. 사전 대본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할 수 없는 '인터뷰 호스트'이다. 처음 볼 때는 좀 거칠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 수록 출연자와 합이 잘 맞아 간다.


많이 다르다. 우선, 대답보다 질문할 때 빛난다. 본론에 들어가기 위해 미사여구를 쓰지 않고 기승전결도 없다. 단도직입 그 자체다. 거침없는 행동과 말은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솔직함을 먼저 내세우는 까닭에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게 기안 84, 김희민 만의 매력이다. '나혼자산다'에서 기안84는 패널 중의 한사람이었다. 기인 행동을 하는 독특한 이력이 기안84의 선입관을 만들었다면 그가 혼자 있을 때 보여주는 날 것의 기안84는 방송인, 연예인으로서의 미사여구를 없앤 인간다움 그 자체다.


출처 : <유튜브 인생84> 이장우 인생터뷰 中

 

기안84가 탤런트 이장우와 대화를 하는데, 드라마 속 잘생긴 훈남 이장우가 말을 잘한다. 역시 그동안 예능에서 봤던 뭔가 부족하고 웃긴 예능인 이장우가 아닌 탤런트 이장우가 다시 보인다. 왜 그런 차이가 났을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기안84의 질문은 출연자를 빛나 보이게 한다. 툭툭 던지는 질문에 날 것 그대로의 답을 잘하는 출연자 이장우가 돋보인다. 1대1 콘텐츠는 그렇다. 진행자가 멋져 보이는 순간 출연자는 죽는다. 질문은 대답을 규정한다. 논리적인 질문엔 왠지 논리적인 대답을 해야할 거 같다. 툭 치고 들어오는 질문은 부담이 없다.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진다.


질문을 잘해야 한다는 걸 평생 업으로 삼아왔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최근 직장에서 있었던 한 앵커가 새삼 떠올랐다. 앵커들은 질문을 잘한다. 앵커든 아나운서든 질문하는 것에는 나름대로 전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 질문법은 달라져야 한다. 쓰는 단어도, 말의 속도도 같아서는 안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날, 그분은 평소와 같은 말투에, 즐겨쓰는 어법으로, 속도감있는 진행으로 상대와 대담을 진행했다. 출연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약간 당황해하는 느낌도 들었다. 인터뷰는 끝났다. 남는건 진행자 뿐이었다. 시청자로서 볼 때는 많이 아쉬움이 남는  인터뷰다.



기안84는 뢰풍항이자 중풍손이다.


뢰풍항은 '한결' 같고 '일관' 된다. 천둥과 바람인데, 우레가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한결같이 잘 움직이고 있다. 성장하려면 바람을 타고 순탄하게 나아가야 한다. 갑자기 방향이나 속도를 바꾸거나 번덕스러우면 성장하기 어렵다. 공자는 아예 굳건히 서서 방향을 바꾸지 말라고 했다. 성장을 할 때는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활동을 개시한 만큼 지금의 방향대로 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중풍손은 약간 다르다. 바람처럼 일의 방식을 바꾸라고 한다. 이때 바꾸는 것은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의미다. 겸손하고 순하게 주체성을 확립하고 있으면 그렇게 방향이 틀어지지 않는다.

 

난 그렇게 본다. 바람은 대중의 시선과 인기다. 인기가 있다는건 사람들이 일관되게 좋아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유는 모른다. 지금의 방향을 잘 유지하는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일전에 나영석 PD도 비슷한 의미의 말을 언론 인터뷰와 유튜브 등을 통해서 한 적이 있다. 모두가 나영석 류의 관찰 예능, 참여 예능, 게임 예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고 했을 때 나 피디는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대충 기억하면 이렇다.


"에그이즈커밍은 방송을 20년 가까이 한 팀이기 때문에 그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이 많고 방송의 뒷이야기를 잘 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것을 다루려고 했고 지금의 '채널십오야'가 됐다."

- 출처 : 나영석 PD, "제작진과 구독자의 거리를 줄이고 싶었다." 씨네21(2024. 4. 26.)


나영석 PD의 말은 결국 내가 잘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사람들이 나(우리)를 보고 찾는 이유는 아직까지 먹히기 때문이다. 난 내가 잘하는 것을 할 뿐이고, 사람들은 아직 우리를 찾고 있다. 새로운 포맷과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기 보다는 우리가 경쟁력 있고, 내가 제일 잘하는걸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뢰풍항과 중풍손이 딱 들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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