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럭이 들려주는 부동산 이야기
지난 시간에 애덤뉴먼과 르 코르뷔지에가 꿈꾼 주거공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르 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구현코자 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바로 논란의 세운상가입니다. 건축가 김수근은 서울 한복판에 이상적인 주상복합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이던 1966년, 서울시장 김현욱의 승인하에 빠르게 착공했고 단계적으로 개발되어 1972년 준공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종로3가에서 퇴계로3가에 걸쳐 8개 동, 무려 1km에 이릅니다. 저층은 전자상가 중심의 상업공간, 고층은 주거였습니다. 당초 김수근은 지상은 차도이자 주차장으로 만들고 3층은 하이라인으로 연결해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고자 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처럼 옥상정원도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건물마다 다른 시공사가 공사를 하면서 하이라인 연결이 없어졌고 공사비용 절감을 위해 정원도 무산되었습니다. 8개 동이 통일성 있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지요. 그리고 남북방향으로 길게 건물을 배치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세운상가가 자리한 종로/을지로 일대는 동서방향으로 도로가 나 있고, 청계천 역시 동서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사람의 이동동선도 그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운상가 건물이 흐름을 뚝뚝 끊어버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볼 수 없는 주상복합 콘셉트에 신식건물이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고위층, 부자, 연예인들이 거주하는 고급주택으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강남이 개발되고 아파트단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이탈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변에도 새로운 건물이 속속 신축되어 고급이미지도 사라졌습니다. 여기에 용산 전자상가가 개발되면서 저층부 전자상가도 빠져나갔습니다. 이제는 쇠락해 버린 세운상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서울시, 건축계가 갑론을박이 뜨겁습니다. 종묘와의 연계성을 고려해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의견과 초고층으로 재개발하자는 의견이 팽팽합니다.
그런데 홍콩에도 세운상가 같은 건물이 있습니다. 바다 건너 홍콩으로 가보겠습니다.
홍콩 구룡반도의 번화가인 침사추이 한복판, 지하철 침사추이역 도보 5분 거리에 3개 동, 17층으로 구성된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습니다. 청킹멘션(Chungking Mensions)입니다. 영국이 지배하던 1961년 지어진 건물로 1~3층은 상업시설, 그 위는 아파트였습니다. 세운상가처럼 초기에는 중국인 부호와 영국인들이 거주하던 고급 주거지였습니다. 그런데 홍콩경기 침체로 영국인들이 대거 떠나고 주변에 더 좋은 신축 아파트가 입주하면서 부유층이 이탈했습니다. 문제는 소유구조였습니다. 여러 명이 각 호실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수익을 위해 개별 호실을 쪼개 임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리주체도 불분명해서 불법 개조가 판을 쳤고 유지보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이후 홍콩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상인들이 몰려오고 배낭여행객이 증가하면서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100여 개 이상의 소형상점, 120여 개국 출신의 체류자가 머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청킹멘션 앞에 가면 여행객을 노리는 호객꾼들이 청킹멘션 직원 행세를 하며 접근합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바퀴벌레를 비롯해 전염병을 옮기는 각종 벌레와 쥐가 득실 합니다. 홍콩의 흥망성세와 함께 한 청킹멘션은 세계화의 축소판이자, 침사추이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독특한 공간으로 여러 영화에서 상징적인 장소로 활용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년작) 입니다. 중경삼림의 영어 제목이 Chungking express인데요. 왕가위 감독과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이 만들어낸 영상과 색감이 세기말 홍콩의 감성을 잘 드러내 줍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림"과 여주인공 왕페이가 부른 몽중인(크렌베리스의 Dreams를 리메이크)은 요즘도 사랑받는 곡입니다.
청킹멘션을 이야기할 때 같이 언급되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은 철거되고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한때는 청킹멘션과 더불어 홍콩의 대표적인 슬럼인 구룡성채입니다. 구룡성채는 청나라 시절 영국을 막기 위해 구룡반도에 설치된 국경 요새였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홍콩섬에 이어 본토인 구룡반도 남쪽까지 점령하면서 99년간 임차하는 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청나라 군사가 주둔해 있던 구룡성채는 청나라 관할로 남겨두게 됩니다. 이후 청나라가 멸망하고 군대가 구룡성채를 떠났지만, 중국 본토는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내전, 공산주의 이후 체제 수립 등으로 구룡성채를 방치했습니다. 영국 또한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구룡성채에 대한 관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무정부 상태인 구룡성채에는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이주한 난민이 대거 유입되고, 경찰과 공권력의 손이 미치지 않다 보니 범죄조직인 삼합회도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구룡성채의 면적은 약 26,000m2로 축구장 3~4개 크기였으나 불법체류자들이 몰려들면서 무단 증축이 난무하게 됩니다. 기존건물 옥상에 또 집을 얹는 방식으로 350개 이상의 건물 블록이 서로 붙어 거대한 단지를 형성했습니다. 건물 간 간격이 없다 보니 안쪽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축축한 환경이 24시간 지속됩니다. 공간이 없어 수도관이나 전기 배선도 대충 천장에 노출되게 연결해 놓다 보니 불결하고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유입인구가 늘면서 수직증축도 계속되어 10층 이상으로 높아졌는데, 불법으로 대충 올려 지어도 건물사이가 붙어 있어 서로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문제는 인근에 카이탁 국제공항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공항 때문에 주변 건물은 높이 제한이 있었으나 구룡성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높아지다 보니 비행기가 착륙 시 구룡성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곤 했습니다. 아키라(Akira)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cell)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세기말 사이버펑크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때 참고한 곳이 바로 이 구룡성채라고 합니다. (cf. 카이탁 국제공항은 1998년 폐쇄되었고 첵랍콕에 국제공항이 개항함)
세금징수가 되지 않는 치외법권 구룡성채에는 장사꾼, 공장들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들도 많다 보니 성채 안에 유치원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많은 인구가 모이다 보니 병원, 치과, 상점이 들어서 하나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26,000m2 공간에 5만 명이 모여 살았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자면 이는 서울에 11억 5천만 명이 사는 셈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 된 것이지요.
범죄소굴로 도시의 골칫거리가 된 구룡성채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중국과 영국 정부는 고민 끝에 1987년 철거를 결정합니다. 1992년 강제이주가 완료되고, 1993년부터 1년에 걸쳐 철거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성채가 있던 자리는 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이제 구룡성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공간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