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럭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 : 종교/역사 편
고비사막에서의 죽을 고비를 넘긴 현장은 천축국(인도)으로 가는 길에 지나친 여러 나라에서 설법을 합니다. 젊은 스님이 상당한 수준으로 설법을 하니, 현장에 대한 소문은 근방에 자자했습니다. 하미시 라는 나라에서 설법을 하던 중 고창국에서 온 스님이 이를 듣고 자신의 국왕에게 안내합니다.
현장에 반한 고창국 왕은 고창국에 머물 것을 요구하나, 현장의 천축국에 대한 열망을 꺾지는 못합니다. 이에, 고창국 왕은 향후 다시 고창국에 들릴 것을 조건으로 금 100냥과 은, 말 30필, 시종 25명을 하사합니다. 이제껏 고행을 해온 현장은 이제 고창국 왕의 도움으로 천축국까지 꽃길만 걷게 됩니다.
영화, "대당 현장" 스틸 컷
마침내 천축국에 도착한 현장은 나란다 대학을 찾아가 총장 격인 계현스님을 만납니다. (당시 106세 였다고 하네요.)
인도 나란다(Nalanda) 대학은 서기 427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대학입니다. 불교 뿐 아니라 의학, 철학, 과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가르친 종합대학으로, 유럽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1088년 설립)보다 600년 이상 앞섭니다. 1197년 이슬람의 침공으로 철저하게 파괴되어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 길이 11km, 폭 5km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으며, 현장이 수학할 당시 108개 사원에 학생수 1만명, 교수 2천명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계현스님은 인도까지 찾아온 현장의 용기와 열정을 높이 사 나란다에서 수학할 것을 허락하고, 현장을 위한 특별 강좌까지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5년간 나란다에서 공부하며 천축국 곳곳을 다니고 수련을 합니다. 중국을 떠나온 지 19년이 되던 해, 현장은 당나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예전의 약속대로 고창국을 다시 들리지만 이미 고창국은 당나라에게 멸망한 상태였습니다.
과거 국법을 어기고 출국한 현장이었는데요. 당나라에 귀국하자 당태종은 현장을 어떻게 했을까요? 당장 잡아 넣었을까요?
아닙니다. 19년의 세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해 왕권은 안정되었습니다. 당태종은 영토 확장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영토확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정보입니다. 다른 나라를 침공하려면 지형, 지리, 풍습, 문화 등을 알아야겠지요.
19년간 서역을 여행한 현장의 머릿속에는 여러 나라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태종은 현장을 반갑게 맞으며 관직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불경 연구에 전념코자 했던 현장은 이를 거절합니다. 현장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당태종은 불경 연구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현장에게 서쪽 나라에 대한 기록을 작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해서 현장은 자신이 방문한 110여 국에 대한 이야기를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장이 말을 하고 변기라는 스님이 대필했다고 함).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대당서역기" 입니다.
(대당서역기는 섬서성 서안에 있는 자은사의 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자은사는 당 고종이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만든 절인데, 대당서역기로 더 유명해 졌습니다.)
이후 현장은 당태종의 후원을 받으며 불경 번역에 몰입했고 1,300여권을 번역했다고 합니다. 평균적으로 5일에 1권을 번역한 셈이라고 하네요. 불경 번역은 현장 전 후로 구역, 신역으로 나뉠 정도로 현장은 불교의 발전에 큰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이상으로 "현장, 순례" 2번째 이야기를 마칩니다. 다음 이야기는 3편에서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