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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순웅 Jul 16. 2018

특수수사 몰아주기로 성장한 윤석열

2000년대 특수수사, 윤석열을 빼곤 논하지 말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윤석열의 특수부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른바 ‘윤석열 키즈(kids)’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채웠다. 특수부 간부들은 캐릭터, 신념, 수사 방식 부문에서 '검사 윤석열'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 서울중앙지검장이 아닌 특수부 검사 윤석열을 이해하지 않고 현재의 특수부를 파악하기 어렵다. 


윤석열 지검장은 타고난 특수부 검사다. 서울대 법학과 재학 시절부터 검사 외에 다른 직업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특히 특수부 검사로서 권력형 범죄를 단죄하겠다는 포부를 친지들에게 밝혔다. 윤석열은 자기 희망대로 특수부 검사로 잔뼈가 굵었다. 그는 1999년 서울중앙지검 검사 시절 경찰청 정보국장을 수뢰 혐의로 구속하면서 특수부 검사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김대중 정부에서 경찰 내 실세로 꼽히던 인물을 구속하는 과정에서 여권의 압력이 상당했을 텐데도 우직하게 수사를 이끌어 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팔짱을 낀 채 서있다. ⓒ 연합뉴스

그가 2003년 광주지검 검사 시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윤석열 검사를 착출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투입하기 위해서다. 중수부는 삼성 등 대기업이 여야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 불법 자금을 건넨 의혹에 대해 수사했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우직한 특수통들을 기용했다. 중수1과장에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 중수2과장에 김수남 전 검찰총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양부남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등이 발탁된 배경이다. 


안대희는 김대중 정부 시절 검사장 승진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지만 우직하게 검사의 길을 걸었다. 기다림 덕에 사법시험 동기인 노무현 대통령 때  그는 중수부장에 발탁됐다. 그는 대선자금 수사를 하면서 ‘국민검사’로 불렸다. 수사 결과 불법 선거자금 수수에 관여한 자는 여야 가리지 않고 구속 기소했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은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 비서실 정무팀장 안희정은 구속됐다. 그는 그의 우직함 때문에 ‘대쪽’이라고 불렸다. 함께 대선자금 수사를 했던 후배들은 그를 닮아 우직한 검사로 성장했다. 당시 중수부에서 활약한 검사들 모임이 ‘우직하게 검찰이 가자’는 뜻으로 ‘우검회’ 일 정도다. 


윤석열은 사석에서 사법연수원 8기 선배인 남기춘 전 지검장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감추지 않는다. 사실 윤석열과 남기춘은 서울대 법학과 79학번 동기다. 그럼에도 윤석열이 검사 남기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안대희에 이어 남기춘이 보여준 강골 검사의 모습 때문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남기춘은 안대희의 애제자다. 


윤석열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부장으로 재직 당시인 2006년 또 대검 중수부로 파견나갔다. 중수부는 2006년 6월 1000억 원대 비자금 조성과 계열사 공금 횡령 등 혐의로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그룹 총수가 구속된 만큼 현대·기아차 그룹은 극성스러운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조선일보 1면 하단 광고에 현대·기아차 그룹과 주요 협력사 공동 광고 형태로 감옥에 갇힌 정몽구 회장을 선처해달라고 탄원했다. 또 주요 해외사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어 국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의 1위 기업이 망하게 됐다고 위협했다. 중수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정몽구 회장을 법정에 세웠고 정몽구 회장은 2008년 6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윤석열은 2006년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도 수사에도 참여했다. 대검 중수부는 2006년 3월 초 국회 재경위가 고발에 의해 특별수사팀을 편성했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를 맡은 박영수 변호사가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었고,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윤석열에게 맡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중수부 수사기획관이었다. 


당대 최고의 특수통들이 중수부에 포진해 수사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주범으로 지목된 스티븐 리가 종적을 감춘 뒤여서 수사는 순탄치 않았다. 그는 1998년 론스타가 한국에 지사를 개설할 때부터 투자 업무를 주도한 인물이다. 수사팀은 리 전 본부장이 수사 착수 전 미국으로 출국한 것을 확인하고 법무부를 통해 범죄인 인도를 추진했다. 리 본부장의 소재 파악을 위해 국제 형사 경찰기구(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11년 뒤인 2017년 8월 이탈리아에서 검거됐다.


수사는 국회가 고발한 외환은행 매각 비리 의혹, 국세청과 금감원이 고발한 탈세, 업무상 배임 혐의, 금감원이 넘긴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2005년 9월 중순 시민단체를 시작으로 2005년 10월 국세청과 2006년 2월 금감원 등이 검찰에 고발하면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은 증폭됐다. 이에 따라 대검은 중수부 중수2과에 사건을 배당하고 서울중앙지검 사건과 합쳐 특별수사팀을 만들었다. 

지난해 5월 19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 임명된 윤석열 검사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사팀은 중수부 명성대로 9개월간 1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하고 630여 명을 소환 조사하는 등 매머드급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수사결과에 대해선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 실무진 6명을 법정에 세웠지만 정관계 거물급 인사들의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속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변양호 전 국장은 2010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원심을 확정받았다. 윤석열은 또 2007년 변양균 전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과 성곡미술관 큐레이터 신정아씨 간 부적절한 관계를 수사했다. 당시 신정아씨는 학력을 위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윤석열은 대구지검 특수부장을 끝으로 지방 검사 생활을 마치고 2010년 대검 중수부 중수2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오자마자 2010년 씨앤(C&) 그룹 임병석 회장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사건을 맡아 수사했다. 이듬해 윤석열은 중수1과장으로 옮긴 뒤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수사했다. 부산저축은행은 당시 불법적이고 과도한 투기성 투자로 막대한 손해를 입고 생존이 어려워지자 일부 고객들에게 비밀리에 예금을 빼어줬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어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반을 이끌며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을 솔로몬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윤석열은 어느 지검 소속이더라도 굵직한 특수 수사마다 참여했다. 이로 인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을 이을 특수통으로 성장했다. 검찰 안팎에서 윤석열을 주목했다. 그는 거칠 것 없이 성장했다. 그가 특수부 검사로서 보인 기개, 수사 역량, 열정은 후배들에게 흘러 들어가면서 따르는 후배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조만간 검찰 내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자리를 예약해둔 듯했다. 호사다마였을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불거지면서 윤석열은 고난의 행군을 견뎌야 했다. 윤석열이 자초한 감이 없지 않다. 특수통으로 승승장구하게 했던 기질이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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