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세요'의 진실

감정 투석 금지

by 사이프러스


흔히 내 감정을 그때그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솔직하게 풀어야 스트레스받지 않는다고. 그럼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대체 뭘 말하는 걸까.


최근에 새 일을 마치고 아침에 퇴근한 적이 있었다. 마트에 들려서 꼭 사야 할 것이 있었지만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다행히 마지막에 간 곳이 문을 열어 들어갔는데, 직원이 엄청 퉁명스럽게 "아직 영업 안 해요"라고 말했다. 나오면서 보니 영업 시작 3분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밤새 일해서 지친 데다 벌써 4군데째 마트에 온 거라 짜증이 솟구쳤는데 그 불친절한 한마디에 기분이 바닥으로 수직 하강했다. 뭘 그렇게 싸가지 없게 말하냐는 말이 목구멍에 아슬아슬하게 걸렸으나 손톱만큼 남은 이성으로 본능을 누른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와서도 얼마간 극도의 짜증에 시달렸고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았는데 그런 내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 컨디션이 안 좋았을 뿐이고 상대가 잘못한 건 없었다. 퉁명스럽게 느낀 건 나였지 그 사람은 그럴 의도가 없었을 것이고, 나도 8시 55분, 59분에도 사무실에서 전화벨이 울리면 어떤 놈이 9시도 전에 전화하냐고 쌍심지를 켠다. 내가 점원에게 화낼 이유는 없었다. 하마터면 그 사람은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될뻔했다.


짜증 나는 상황을 인지하고 스스로 풀어내거나, 상대 입장을 배려하면서 말로써 감정을 표현해 내는 것이 '솔직히 표현하기'이다. 안 그래도 짜증 나 죽겠는데 돌부처도 아니고 어떻게 감정을 생각하고 그걸 또 풀어서 말하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연습을 해야 한다.


왜냐면 이걸 잘하게 되면 내 마음을 챙기고, 내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분 나쁠 때마다 버럭버럭, 내 안에 있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화를 표출하는 것은 내 감정의 쓰레기를 상대에게 던지는 것뿐이다. 내가 무인도에 혼자 살 거면 이런 노력은 안 해도 된다. 화나면 바다 가서 소리치고 바위 치면서 살면 되니까. 근데 인간 세상에서 복닥이고 살 거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나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서부터 상대가 소중한 사람수록 생각을 더 해야 한다. 내가 지금 드는 감정, 저 사람이 저 말을 하는 이유, 배경을 생각해보고 차분히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을 흉기처럼 쓰면 상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상대를 배려해서 마음을 표현한다면 상대는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둘이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피하지 말고 말하는 거지 누가 그렇게 감정을 투석하듯이 던지라고 했나.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다 보면 억장이 무너지는 일도 있을 것이고 기도 안 차는 일이 무수히 많이 생길 거다. 배려와 이해라는 단어가 뜬구름 같게 느껴질 때도 있고 집어치우잔 생각, 왜 나만 배려하는 호구인으로 사는가에 대한 현타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도구 중 '배려와 이해'라는 것만큼 훌륭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망쳐진 순간에 유일하게 상황을 복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배려와 이해라는 도구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