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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진엄마재송 Nov 08. 2023

보이지 않아도 구름뒤에 파란 하늘은 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파란 하늘이 있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아도 있어야 할 건 있다. 보이지 않아 우왕좌왕하며 현재를 후회로 날려 보내기보다 보이지 않아도 있다고 믿으며 현재 내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나가면 결국에는 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이가 어린 시절 아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 시절에 극도의 우울증을 경험했다. 상담, 운동, 명상, 글쓰기로 많이 치유가 되었지만 아직도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는 것. 하지만 싹이 난 감자에서 독이 들어 있는 싹만을 잘라내듯 우울을 내 감정의 스펙트럼에서 잘라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겠지. 우울한 감정도 존재가치가 있고, 게다가 감정은 죄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울한 감정이 너무 심해 현재의 삶이 잠식되어 버리는 건 문제다. 감정이 왔구나 하고 적당히 느끼기만 하고 싶다. 하루 종일 우울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차라리 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따위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고 속으로 속으로 내면의 땅굴을 파서 들어가기만 하고 시도하지 않는 삶을 후회하면서 살아왔다. 영국 극작가 버나스 쇼의 묘지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하며 땅속에 있는 삶은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필요할 때에만 우울한 기분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 훌훌 털어버리며 기본 감정이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아닌 긍정적인 정서에 있는 밝고 활기찬 삶을 살고 싶다. 


 아직 우울한 기분이 드는 건 아마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 원하는 이상이 너무 높아 아예 주저앉아버리고야 마는 인생이었다. 하지만 지난번 번아웃 극복기에서 썼듯 나는 이것을 완전히 정말로 완전하게 극복할 것이다. 내가 미래에서 왔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아주 대견하게 생각할 거다. 지금 이 순간으로 인해 미래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 모든 시련도 결국에는 지나간다. 나중의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거야. 이제 곧 마흔이 될 나에게 10대 20대의 고민을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냥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웃음이 나는 것처럼. 그 당시에는 평생 지속될 것처럼 그 누구보다 맹렬하게 고민만 하고 주저앉아버렸지만 결국에는 다 지나간 것처럼. 





 며칠 전 아침부터 비가 왔다. 따뜻한 햇살과 파란 하늘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하늘에 우중충한 회색 비구름이 가득했다. 별거 아닌 일로 애들을 혼내고 화내서 우울한 하루였다.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현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그 시커먼 구름 사이에 파란 하늘이 아주 작게 보였다. 나 여기 있으니까 잊지 말라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하지만 또렷하게 보였다. "아, 파란 하늘이 저기 있었지. 잊고 있었네"하고 생각했다. 하늘이 사인을 보내서 잊고 있었던 파란 하늘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별거한 거 없이 파란 하늘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우울한 감정이 눈에 보이는 먹구름처럼 보이더라도 내면에 희망찬 미래인 파란 하늘은 항상 있다. 비록 지금은 하늘에서 한 조각의 하늘을 보고 나서 기분이 좋아진 거지만, 하늘의 사인이 없고 정말 긴 장마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을 때에도 언제나 파란 하늘은 계속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 길고 긴 우울을 끝낼 수 있으니까. 어둠은 영원하지 않고 지나갈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눈부신 태양과 파란 하늘은 언제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있다고 믿는 걸 '대상영속성'이라고 한다. 유아가 엄마가 있지만 눈앞에서만 사라지면 엄마가 없어졌다고 울지만 '대상영속성'의 능력을 획득하면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존재한다는 걸 믿게 되어 울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대상영속성'을 획득하는 유아처럼, 지금의 이 감정은 지나가고 지금의 감정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숨어있던 밝은 햇살과 파란 하늘을 만난다는 걸 믿는 능력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 말이다. 그렇게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일단 믿고 그냥 묵묵히 오늘 하고자 했던 일을 하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쌓인 현재가 모여 미래의 내 모습이 된다. 


 믿자. 나를 믿자. 다 지나간다. 미래에 웃으며 지금 이 시간을 추억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 보이지 않아도 있는 건 있는 거다. 그러니 굳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두려워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보자. 잘하고 있다. 정말 잘하고 있다. 이렇게 오늘 또 성장했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새 생명을 피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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