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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Sep 13. 2020

그건 아니죠. 내 말이 맞다니까요

라일락 향기의 농도와 자기주장의 강도

작은 아이 초등학생 때 일이다.

이른 아침, 녹색 어머니 봉사활동을 하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날따라 엘리베이터가 쉽게 내려오지 못하고 층마다 섰다가 내려오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걸어내려 갈까?' 하고 뒤돌아서 계단을 쳐다봤지만 역시 무리였다.

잠시 뒤 우리 층에 선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난 북적거리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구겨 들어갔다.


'윽' 

육성으로 소리가 나올 뻔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참았다.


엘리베이터 안, 일곱 명의 사람 중 누군가에게서 뿜어 나오는 진한 향수 냄새.(이건 향기가 아닌 냄새였다)

이른 아침 피곤을 눌러주려고 들이부은 홍차가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숨을 참고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난 몇을 셀 때까지 숨을 참을 수 있을까? 시험하고 있었다.






진한 향수 향은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맡고 싶지 않은 향이 피할 수 없이 후각을 점령하듯이, 강한 자기주장은 상대방의 기분을 침범하기 때문이다.


코끝을 찡그리게 할 만큼, 자기주장이 강하던 내 지난날을 불러와 본다.


신혼 초, 주기적으로 다투고 토라지던 시절,

난 내 주장이 강한 편이었다. 

나에 못지않게 자존심이 센 남편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우리는 늘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북쪽을 보고 선 나와

남쪽을 보고 선 남편에게

각자의 오른쪽을 가리키라면 서로 반대방향일 수밖에 없는데

그 방향이 일치하길 바랐던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지난한 다툼 끝에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마주 본 상대편의 오른쪽은 나의 오른쪽과 반대 방향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첫 단계 합의점에는 이른 셈이다.

내 답안에 대한 확실성을 내려놓고 상대방 오답에 대한 불확실성을  열어두게 된 것이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논쟁은 이어나갔지만, 되도록 피해 가는 쟁점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는 어느 쪽이 오른쪽인지를 두고 한참의 조정시간이 필요하기는 했다.


주말 아침, 부지런한 남편이 또 나가자고 한다.

"저쪽, 거실 화장실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번 달 안으로 수리하자."

이 코로나 시국에 거실 화장실을 개조해야겠다는 것이다. 이사 온 지 오래돼 화장실이 낡긴 낡았다. 하지만 지금 때가 때이니 만큼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 무슨 수리? 그냥 놔둬"라고 했을 것이다. 그뿐인가? 내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려고 몇 마디 덧붙였을 것이다.

" 아니 무슨 화장실 공사? 당신은 그래서 안돼. 그렇게 배려심 없어서 되겠어? 시끄러워 못해. 안돼."

왜 안되는지, 어떻게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지는 생략한 채, 그냥 반대의견인 결론만 남편한테 투척하곤 했다. 논리와 설득은 쓸모없는 포장지가 돼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였다.

이런 결론을 투척받은 남편은 내가 자신을 공격했다고 생각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반감에 더 강하게 밀고 나갔을 것이다.

" 난 해야겠으니 그리 알아"


26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방향을 남편 쪽으로 약간 틀 수 있게 됐다. 남쪽을 보고 있는 남편의 반만큼, 서쪽으로 틀었다고 할까?

"응, 수리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휴) 지금 말고 수능 끝나고 해, 지금 고1, 2 중간고사 기간이고, 그다음 달엔 고3 기말고사, 그다음 달에는 수능 시험 전이라 공사하면 방해될 거야. 조금 참았으면 좋겠어."

 추진력 강한 남편이 한번 반기를 든다.

" 아니, 몇 주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철거작업은 하루 이틀이면 된다는데 그게 왜 안돼?"

휴(잠시 심호흡을 하고) 좀 더 방향을 튼다. 이제 곧 마주 보던 남편과 나란히 설 기세다.

" 알아. 빨리 하고 싶겠지. 근데 지금 다들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 중이야. 소음이 심하면 소리가 안 들려.

당신도 중요한 시험 앞두고 윗집에서 공사하면 가만히 있었을 거 아냐.(여기서 음성이 커지려다 애써 다시 누른다) 우리 윗 윗집 고3 수험생 있고 아래 아래 아랫집 고1 학생이야. 요즘 애들 불쌍해, 학교도 못가 친구도 못 사귀어. 집에서 눈 아프게 온라인 수업만 듣는데 거기에 소음까지 보태줄 수는 없어."

"....................." 

조용해진 남편에게 좀 더 확실한 쐐기를 박으려고 소파에서 일어난다.

"대신 지금 가서 보고 모델은 정해놓자. 시공만 미루면 되잖아."

그렇게 주말마다 화장실 개조를 위한 인테리어 샵을 돌아다닌 지 몇 주째다 ㅜㅜㅜ

방향을 트는 건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자기주장만 강한 것은 상대방에겐 일종의 폭력이다. 

특히 한 포대자루에 담겨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부부 사이에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만 고집하는 것은

상대방은 싫어도 참고 따르라는 말 밖에 안된다.

밀폐된 공간인 엘리베이터 안  향수 공해처럼, 같은 포대자루에 담긴 부부 중 한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만 고집하는 주장도 폭력이다.

(애초에 한 포대자루에 담긴다는 것이 무리이긴 하지만, 어쩌랴. 그렇게 하겠다고 서약을 했으니.....)


우리는 아주 오랜 기간 포대자루 안에서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만 고집하며  다퉜다.

나도 남편도 서로 보이지 않는 폭력을 하고 산 셈이다.

타인의 영역까지 침해하는 강한 자기주장은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에게 전해오는 진한 향수 향 같다.

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뒤흔든다. 피하고 싶은 마음만 강해질 뿐이다.





어렸을 때, 내 방 앞에는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뒤적거려 찾은 몇 안 되는 아이 때 기억 중 하나는 라일락 나무에 꽃이 피면 나도 가슴이 피어오르듯이 벅찼다는 것이다.


꽃망울이 작은 꽃을 좋아하는 나는 라일락의 작은 꽃망울도 좋았고 은은한 향기도 좋았다.

그래서  발코니로 나가서 고개를 깊숙이 숙여 라일락 나무 향기를 맡다가 엄마한테 혼나곤 했다.


반면 마당에 가장 탐스럽게 피어있던 목련이 피는 날이면 초점 흐린 눈으로 목련을 멍하니 쳐다봤다.

저 목련의 복실 한 화사함이 어떻게 추하게 지는지, 매년 봐왔기 때문이다.

꽃의 왕비같이  화사하던 목련은 끝부분부터 검게 색이 죽어갔다. 마치 꽃잎 한 장 안에서 생로병사를 다 보여주는 것 같았다. 더 특이했던 것은 목련꽃은 라일락에 비해서 향기가 약했다. 그 탐스러운 꽃이 마당 가득 피었어도, 마당에 서서  눈을 감으면 존재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꽃마다 향기의 농도가 다르다는 것을 그때부터 알게 됐다. 


'난 질 때 예쁜 꽃이 좋아. 꽃이 피었을 때만큼이나 질 때 모습이 중요해."

"난 향기가 은은하게 번지는 꽃이 좋아. 꽃은 모양보다는 향기야."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20대 초반부터 향수 고르는 데 공을 들였다. 나만의 향을 찾기 위해 이 향수 저 향수 모으고 시도해 봤다.  결국 하나로 정착해 수년을 사용했다. 그 후, 중요한 시점마다 향수를 바꿨다. 내게 있어서 향기를 바꾼 다는 것은 내 심신의 분위기를 바꾼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지나친 향은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알아서 약하게 뿌리고 다녔다. 몇 년 전부터는 아파트 주민 덕분에 코끝을 지르는 향은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까지 알게 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나친 향수 냄새를 맡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느낀 후에는 향수의 농도에 더 민감해졌다.


보기 싫은 광경은 즉각적으로 눈꺼풀을 내려, 그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다.

맡기 싫은 냄새나 향기는 애써 숨을 참아봤자, 한계가 있다.

그래서 광경 공해보다, 향기(냄새) 공해가 좀 더 집요하고 폭력적이다.


'맑고 향기롭게'

한때 내 인생의 좌우명이었다.

향기가 향기로우려면 향기의 색만큼이나 그 농도의 정도가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같이 살아가려면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지혜를 쌓아가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믿는 신념을 어느 정도 강도로 펼치느냐도 중요하다


아무리 만인의 동의를 받은, 검증된 '옳은 말'이라도 너무 세게 주장하면 그 말의 흡수력은 반감한다.

향기만큼이나 농도 조절이 필요하다


30대, 40대 난 

내 주장의 방향을 정하는 일에 공을 들였을 뿐,

그 주장을 펴 나갈 때 강도 조절은 하지 못했다.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강하게 향기를 뿜어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듭된 소통 실패로 마음을 닫고, 향기를 죽여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했다.


이제는 향수 원액을 뿌릴 때, 농도 조절만큼이나

내 주장을 펴기 전, 강도를 가늠해 보려고 한다.


오늘은 이 정도 선에서만.

라일락 향기만큼만.



이 글은 21. 3월에 출간된 책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에 일부 수정돼 실려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출간 이야기 (brunch.co.kr)



                                                                                                              <사진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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