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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샘 Nick Sam Feb 20. 2020

‘배움’을 위한 공간이지만, ‘공부방’은 싫다

배움의 공간 메이킹노트 #4 공간에 이름 짓기

'공부방'으로 하세요!


청소년들을 위한 배움의 공간을 창업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많이 들은 이야기다. 공간을 사용하는 고객이 학생이라면,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은 부모님이다. 부모님들의 신뢰를 마음을 얻으려면 공부방의 컨셉이 옳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공부방이라고 떠올리는 공간이고 싶지는 않다.


청소년이 편하게 쉬고 놀고 머무는 공간이고 싶다. 공간 자체로 청소년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공간이고 싶다. 배움은 참여하는 사람이 마음을 열었을 때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들고 싶은 배움의 공간에서는 청소년이든 청년이든 공간 운영자나 다른 어른들에게 신뢰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공부방보다는 놀이방, 학원보다는 만화방 같은 공간이고 싶다. 그런 공간에서도 충분히 배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 공간이어야 진짜 배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갈만한 안전한 공간으로 공부하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청소년들은 카페처럼, 아지트처럼 여기는 공간이고 싶다. 그렇다면 이름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


공공에서 운영하는 한 '청소년 공부방' 입구의 모습


공간의 이름을 생각하며 처음 떠오른 단어는 '놀이'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와서놀아!" 정말 그런 공간이고 싶었다. 나의 제한된 상상력으로는 만화책도 있고 보드게임도 있고 일단 가서 쉬고 싶은 공간이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유사한 공간을 조사하며 알게 된 곳은 충남 홍성군에 'ㅋㅋ만화방'이라는 공간이다. 홍성 마을공동체에서 운영하는 공간인데 아이들이 마음껏 와서 노는 만화방이지만 다양한 수업과 문화행사도 진행하는 청소년 공간이라고 한다. 공간의 컨셉은 ㅋㅋ만화방과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이름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남 홍성군 청소년 공간 'ㅋㅋ만화방' (이미지 출처 : ㅋㅋ만화방 페이스북 화면 캡처)


일단 인스타그램에 '와서놀아'라는 계정을 만들어 놓고 고민을 더 시작했다. 발음을 그대로 영어로 쓰면 'whasunola'? 줄임말로 하면 '와.놀.', '와놀 코러닝스페이스'? 나름 마음에 드는 것도 같았지만 너무 장난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요즘 유행인 만화카페 프랜차이즈 이름 같은 느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세련되고 상징적인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떠오른 이름 '와서놀아'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며칠 동안 영어 발음으로 풀어쓴 whasunola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whasu'이라는 앞부분이 와서가 아니고 '와썹(wassup)'을 떠올리게 했다. 'Wassup'은 'What's up?'(무슨 일 있어?)을 줄인 단어로 미국에서 가볍게 '어이!, '여!'라고 안부를 묻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수평적인  대화의 느낌을 주는 '와썹'이라는 미국식 인사가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와서놀아의 '놀아'는 영어로 'Play'? 합치면 '와썹? 플레이! (Wassup? Play!)'다. 묘하게 '와서놀아'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면서도 더 재미있다. 그리고 한글 발음을 더 줄인다면, '와플'. 달콤한 와플(waffle)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Wassup, Play를 줄인다면 Wa.Pl.로 진짜 와플(waffle)과 스펠링은 다르지만, 어쨌든 맛있는 와플을 떠올리지 않을까? 스펠링이 틀리면 어떤가. 오히려 사람들이 '와플'의 뜻을 궁금해하고 한 번 더 이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중의적인 뜻도 재미있다. 그렇게 '와썹, 플레이'의 줄임말 '와. 플.'을 사용하게 되었다.


'와.플.' 뒤에는 어떤 말을 붙일까?


공간을 상징하는 단어를 결정하고 나니 공간의 목적을 나타내는 단어가 더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되었다. 와플이라고만 써놓으면 와플 가게라고 생각할 것이고, 'Wassup, Play'를 풀어써놓더라도 '배움의 공간', 그리고 '코러닝스페이스(Co-learning Space)의 뜻을 어떻게 전달할까? 특히 '부모님들'께.


여러 가지 단어를 생각했다. 학원, 아카데미, 쉼터, 배움터, 서당(?), 학교, 스쿨... 등등. 학원과 아카데미는 너무 사교육 기관 같다. 쉼터와 배움터는 너무 흔하고 가벼운 느낌이다. 학교와 스쿨은 교육 기관에 대한 기대와 화살(?)이 날아올 것만 같다. 그렇게 고민하며 며칠이 또 지났다. 이름 만들기는 참 쉽지 않구나 생각했다. 너무 많이 고민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무 이름이나 붙이기는 싫고. 스스로 정하고는 싶고.


그렇게 지내면서 공간을 조성할 충남 공주시 원도심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다양한 분들을 만났다. 새로운 공간이 공주 지역의 분들의 마음에도 거부감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주 원도심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정체성을 살리고도 싶었다.


공주사대부고 정문이 보이는 공주 원도심 반죽동길


공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조금씩 지인들께 귀동냥도 하고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현재의 공주사대부고 자리는 충청남도 감영 자리다. 전통적으로 인재를 배출하는 도시였다. 약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명 중/고등학교는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학교다. 100여 년 전에 생긴 십여 개 학교들이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 국립 공주대학교와 공주교육대학교도 생기면서 충남권의 교육도시로써 역할을 했다. 공주 원도심에는 공주사대부고 근처로 하숙 마을의 모습이 남아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지역에서 살아오신 분들은 교육도시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하시다.


내가 만들어갈 '배움의 공간'이 비록 창업을 통해 민간에서 조성하는 공간이지만 잘 운영하여 교육도시로서 공주의 명성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거점이고 싶다. '와.플.'이 영어 말에서 왔고 재미있는 느낌이라면 뒤에 붙는 말은 공주의 전통적인 느낌과 학구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서당'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서당'이라는 말을 붙인다면 학생들이 나를 '훈장님'으로 부르게 될까 하는 생각과 함께 유교적인 교육기관의 느낌이라 싫었다. 학구적인 분위기라... 갑자기 떠오른 단어는 '학당'이었다. 그렇다면 '와플학당'?


학당이라는 단어가 청소년들에게 주는 느낌에 대해 좀 더 고민했다. 주변에 만날 청소년이 없어서 지인들에게 좀 물어봤다. 한 지인의 대답에서 힌트를 얻었다."학당이라는 단어를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걸요?"

그렇구나! 나처럼 어릴 적 '봉숭아학당'이라는 개그 프로그램을 본 세대가 아니면 요즘 아이들은 '학당'이라는 단어를 보기 어렵겠구나. 잘 쓰지 않는 단어라 어떤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는 단어이면서도 '배움'이라는 개념은 떠올리기 좋다. 그렇게 결정했다.


코러닝스페이스 '와.플.학당'


그렇게 '배움의 공간'의 이름을 결정했다. 이름을 결정하고 나니 이름에서 연상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청소년들을 위한 간식 제공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왕이면 '와플'을 제공하자. 그리고 로고를 디자인하는 지인께 부탁해 며칠에 걸친 회의를 거쳐 로고도 만들었다. 사람들이 공간을 떠올리면 바로 상징적인 간식 '와플'을 떠올릴 수 있게 와플의 형상을 로고에 넣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간단한 문구도 넣었다.

와썹Wassup, 플레이Play! '맛있는 배움'


이제 맛있는 배움과 배움 맛집의 구체적인 상상이 시작되었다.   


2020년 2월 20일 by 닉샘

배움의 공간 '와플학당' 코러닝스페이스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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