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사자.

너도 사자, 나도 사자.

by 멋쟁이 한제

아이와 오즈의 마법사를 읽는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다. 어릴 때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읽었을까 궁금하다. 오즈를 찾아가자, 도로시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방방 뛰었던 기억도 있으니 나의 어린 시절에도 오즈의 마법사는 확실히 있었다. 책은 기억 안 나지만.


어른이 되어 읽으니 다른 누구보다 겁쟁이 사자에게 마음이 간다. 사자인데 겁이 많다니, 귀엽고도 인간적이다. 아니 사자적이라고 해야 하나. 겁도 많고, 걱정도 많고, 게으르고, 슬기로운 생활, 건강한 생활, 부지런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엄마라서 꽤나 그런 척, 그렇게 살아야 하는 내 모습이 보여서 인지도 모르겠다. 겁쟁이 사자가 무서움을 참고 어흥하듯이, 나도 두려움을 견디며 아이들 앞에서 짐짓 괜찮은 척한다. 사실은 무섭지만, 나의 무서움은 몇 배로 증폭되어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이기에 의연한 척한 적도 많다. 그게 무슨 일이었나 세세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엄마가 되고 난 후 겁쟁이 사자는 그냥 겁쟁이 사자로 보이지가 않았다. 때로는 나로, 우리 신랑으로, 우리 엄마로, 우리 아빠로 보여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되었다. 겁쟁이 사자가 두려움을 꾹 참고 어흥하며 진짜 사자가 되어 가듯, 나도 무섭지만, 긴장되지만, 귀찮지만 의연하게 꼿꼿하며 그렇게 엄마가 되어 살고 있다. 때로는 돌아서서 다리가 풀리기도, 눈물이 터질 때도 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사자이고 싶다. 엄마가 사실은 겁쟁이라는 걸, 아이들이 크면 알게 되어 나를 더 이해해 주고 사랑해 준다면 참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엄마로서 의기양양한 사자인 모습으로 아이들의 마음에 남는 것도 꽤 괜찮은 인생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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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겁쟁이 사자 램버트가 있다. 황새가 엄마 양에게 배달해 준 아기 사자, 배달 사고임을 인지한 황새는 아기 사자를 도로 회수하겠다 하지만, 순한 양 엄마는 그런 황새를 들이받으며 아기 사자를 자기 새끼로 지켜낸다. 아무리 순한 양이어도, 자기 새끼 앞에서만은 맹수미를 뽐내는 것이 엄마이다. 아기 사자는 양들 가운데서 자라며 양처럼 굴지만 도무지 양이될 수 없어 슬프다. 다른 양들은 감히 사자를 비웃고 놀린다. 자기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자는 제가 사자인 줄도 모르고, 아니 사자가 무엇인 줄도 모르고 양들에게 놀림당하며 겁쟁이로 자란다. 가스라이팅과 따돌림, 인종차별의 전형이라고 보인다. 결말에는 양들을 해치러 나타난 늑대를 향해 겁쟁이 사자가 용기를 내어 여흥을 해서 영웅으로, 사랑받는 사자로 거듭난다는 해피 엔딩의 그림책이지만, 마음 한 구석 조금 무거운 마음은 있었다. 램버트를 놀리는 다른 양들을 혼내는 어른은 왜 없지, 자기와 다르다고 그렇게 놀리면 안 되는 건데, 얘들아, 그거 학폭이야, - 더 글로리의 늪에 빠져있는 1인- 저 양들 중에 연진이는 없는지 곰곰이 그림을 뜯어 살펴보았다. 온몸을 던져 램버트를 자기 새끼로 받아들인 훌륭한 엄마양도 기질과 성격을 파악해야 하는 육아에선, 형편없긴 마찬가지였다. 사자에게 너는 훌륭한 양이될 거라고, 다른 양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한다. 세상에나, 나를 뒤돌아 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딸 셋 중에 막내딸로 큰 내가 아들 둘을 키우는 것이, 바로 이 엄마 양이 아들 사자를 키우는 마음과 비슷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 다 순한 애들밖에 없었는데 어디서 이런 놈이 나왔지하고 낯선 마음이 솔직히 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키는 대로, 내가 커 왔던 대로, 순하게, 얌전히 자라라고 해도 될까. 엄마 양은 램버트를 그렇게 키워서 애가 겁쟁이가 되었는데, 나라고 그렇지 말란 법이 어딨 는지, 나는 양들의 시선에 갇혀 사자를 양처럼 키우고 있지는 않나 한 번 생각해 본다.


생태 유치원에서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 오던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더니 체력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집 앞 공원에서 화단에서 나무와 풀과 흙을 가지고 한참을 놀아야 직성이 풀린다. 거기 개들이 다니면서 쉬하는데라고, 손톱에 때 낀다고, 그 손으로 지금 과자 먹겠다는 거니, 춥다 들어가자, 엄마 간다,를 연발하며 쟤네들은 왜 저럴까를 한참 생각했는데 우리 아들들도 순한 양에게서 크고 있는 사자 램버트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위로를 받는다. 사자는 사자처럼 키워야 하듯, 아들도 아들처럼 키워야 하니까.


두려움을 꾹 참고 애써 의연함을 보이는 내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겁쟁이 사자처럼, 망아지처럼 날뛰는 아들들은 겁쟁이사자 램버트로 보인다. 너도 사자, 나도 사자, 우리는 그냥 다 사자 하자. 잘 크자, 잘 살자, 잘 늙자. 너희 사춘기에, 나의 갱년기에 피 터지게 싸우지만 말자꾸나. 사자들끼리.




KakaoTalk_20230315_152816116.jpg 다이아몬드 광산을 만드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