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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Dec 16. 2023

일 인분을 셋이서.

떨어진 성능, 낮아진 사양

라면 하나에 햇반 하나, 일 인분을 셋이 나눠 먹는다. 애들이 잘 먹을 때는 혼자 라면 한 그릇도 뚝딱 하더니만 얼마 전 호되게 감기를 돌아가며 앓은 후로는 먹는 것이 영 션찮다. 꼭 독감 같았는데 독감은 아니라 하고, 며칠 동안을 끙끙 앓더니 일어나긴 일어났는데 병 끝이 길다.


나는 괜찮았다. 괜찮은 줄 알았다. 열이 조금 나긴 했지만 타이레돌 두 번 먹고는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했는데 아이들의 병 끝에 나는 구내염과 다래끼를 달고 살고 있다. 일하는 곳에서도 독감과 코로나, 감기가 끝이 없이 돌고 있는데 아마 내 몸이 감염이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나 보다.


나는 몸이 피곤하여 밥을 할 동력을 잃었고 아이들도 딱히 뭘 먹거나 찾지 않는다. 귤을 잘 먹어서 떨어지지 않게 사다 놓고 있다. 사리곰탕 하나에 밥 한 공기를 나누어 셋이 먹고는 귤을 까먹으니 설거지도 간단하고 편하고 애들도 조금이지만 맛있게 먹었다 한다. 이래서 라면, 라면 하는가 보다.


일 인분을 셋이서 나누는 것이 어째 익숙하다. 일 인분으로 탑재된 내 머리를 근 십 년 가까이 둘이서, 셋이서 나눠 쓰다 보니 영 션찮아졌다. 과부하가 걸리다 못해 성능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손에 비타민을 한 알 올리고는 머릿속으로 가장 최근에 비타민 먹은 장면을 떠올리는데 그것이 오늘인지 어제인지 모르겠다. 똑같이 비타민 먹는 장면이 반복 재생 되는데 이것은 어제의 일인가, 오늘의 일인가, 며칠 전의 일인가. 하도 까먹으니 요일별 약통을 구비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도 매일 까먹는다. 이런, 하도 까먹으니 알람을 설정을 하는데 울리는 알람을 끄고는 까먹는다. 에잇. 한때 아름 총총하고 총명했던 내 머리는 세등분으로 쪼개지며 (등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 머리지만 내 지분이 제일 적을지도) 형편없이 사양이 낮아졌다.


돌아서니 또 밥시간, 밥 한 공기에 소고기 볶은 것을 조금 섞어서 유부초밥을 만든다. 밥 한 공기로 만든 삼인분이지만 전혀 모자람이 없다. 셋이 모두 두어 개씩 먹고 이만하면 됐다 하고 일어난다. 집 나간 입맛이야 조만간에 돌아올 것이라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형편없어진 내 머리는, 내 기억력은 돌아오긴 하려나, 몸이 다시 건강해지면 기억력도, 기력도, 활력도 돌아오겠지 하고 걱정하고는 까먹어 버리련다.



브런치에 글을 한동안 안 썼더니 알림이 떴다. 글쓰기도 근육과 같아서 안 써 버릇하면 없어진다나, 뭐요? 체력, 기억력도 슬슬 떨어져서 걱정인데 글쓰기도 떨어진다고요? 글쓰기도 근육과 같다고요? 근육은 원래 없었는데 그럼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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