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Jun 14. 2024

홍천, 옛날 팥죽.

결혼 십주년, 소박한 만찬

와이프를 잘 못 만난 우리 남편은 장장 7시간에 걸친 물놀이 끝에 팥죽집에 갔다. 나는 가끔씩 팥죽, 호박죽을 찾는데 그게 하필 오늘, 죽 먹고 싶다는데 딴 거 먹었다가 탈이 날 걸 나보다 더 잘 아는 그는 워터파크에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팥죽과 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그냥 갔을 뿐인데 허영만의 식객 맛집이었다. 테이블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주방은 이런저런 재료손질로 바빠 보였다. 칼제비와 팥죽, 콩국수.  물놀이로 엄청난 체력을 소진한 후의 식사치 고는 무척 소박하지만 담백하고 배부른 한 끼를 주문했다. 팥죽은 옛날에 우리 엄마가 해 주던 것 같았고 칼제비도 자극적이지 않아 아이들도 후룩후룩 잘 먹었고, 콩국수도 시원한 별미였다. 적당히 익은 배추김치도 꿀 맛. 나만 맛있나? 다 맛있는 거 맞지?


오늘은 결혼 십 주년이다.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지 십 년이 지나다니,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정말 나의 세상은 180도 달라졌다. 세상에 없었던 두 놈이 생기며 에구구구 비가 오려나. 를 때로는 기상청처럼 맞히기도. 하지만 내 삶 곳곳은 컬러풀해졌고, 깊은 맛이 더해졌으며 빈티지의 그 무엇처럼 무척 낡았지만 멋이 생기기도 했다.

격렬한 물놀이를 마치고 한 여름에 팥죽을 먹으며 군말 없이 식당에서 소박한 식사를 하는 세 남자를 본다.

홍천 오션월드. 힘들다, 힘들어.



십 년, 응애하고 태어난 아기가 열 살 소년이 되는 그 시간만큼 나는 뭣도 모르던 결혼 0일 차에서 이만큼 자랐다. 20주년에는 뭐 하고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 눈물의 여왕 ㅠ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