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Sep 07. 2024

워킹맘의 속사정

엄마도 컵라면이 아쉬워.

출근을 하며 아이들 저녁상을 봐 놓고 나간다.  방과 후 교실 및 학원 수강으로 아이들을 저녁 때 까지 외부에서 보내도록 방과후 시간을 셋팅해 놓긴 했지만 저녁 급식을 먹을 곳은 없고 많이 늦진 않더라고 엄마, 아빠가 올 때까지 간식만 먹고 기다리기엔 너무 배가 고프니,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저녁을 챙겨놔야 하는데 이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어른이라면 밥이며 찌개를 냉장고에 넣어 두면 알아서 덜어서 데워 먹을 수 있겠지만 아직 아이들이다 보니 전자렌지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서 메뉴의 폭도 줄어들고 아이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것이 영 아쉽다. 일단 엄마가 즉석에서 해 줄 수 있는 면류 제외, 식으면 뻣뻣해지거나 마르는 음식, 기름이 하얗게 굳는 고기류 제외, 날씨에 따라 너무 습한 여름날 쉽게 상할 수 있거나 눅눅해 질 수 있는 음식들을 빼다 보니 정말 종류가 많이 없어진다. 유부초밥, 주먹밥, 볶음밥을 이렇게 자주 먹은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자주 먹었고, 물만두도 굽거나 튀겨서 챙겨 주었고, 엄마의 잔소리가 없으니 채소 먹는 양이 줄어서 계란말이에도 채소 듬뿍, 어떤 날에는 솥밥처럼 밥에도 온갖 채소를 다져 넣고 지어 주기도 했다. 카레나 짜장도 채소를 쉽게 먹일 수 있는 식단인데 따뜻하게 데워 먹을 수가 없으니 보온병을 준비했더니, 그것도 꽉 닫아두자니 아이들 힘으로 못 열어서 설렁하게 닫았더니 거의 식었었다고 한다.


엄마인 나는 아이들이 식은 밥을 먹는 것이 속상한데 아이들은 식은 밥 보다도 떡볶이나 면류를 자주 못 먹는 것이 더 아쉬운 모양이다. 칼국수나 수제비를 먹고 싶은 날, 엄마가 일을 나가는 것이 더 아쉽다고 하는 아이들. 그래도 엄마가 일하러 나가는 상황을 잘 이해하고 둘이서 의지하며 차려 놓은 저녁밥을 챙겨 먹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둘째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아침 먹은 것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빨래를 개고, 저녁 먹을 것을 차리고, 어지러진 그릇들을 다시 치우고 나면 출근시간이 되는데 정신없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을 해서 자리에 앉으면 휴우, 하는 한숨이 나온다. 이제 처음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 일터에 나온 것이 오히려 편한 아이러니라니, 출근을 해서 일 하는건 뭐 바쁘긴 해도 시간이 금방 간다. 얼른 일을 마치고 엄마의 퇴근시간이 되면 운전대를 잡을 즈음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전화벨이 울린다.엄마 어디 오냐고, 전화 통화를 하며 밥 먹었어? 숙제 했어? 를 하다보면 집에 도착하는데 깨끗이 먹은 날도 있고 이리저리 흘리며 먹은 날도 있고 입맛이 없었는지 먹는둥 마는둥 한 날도 있다. 조금 더 먹이고 나도 조금 더먹고 다시 치우고 닦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방 이다.

이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벌써 9월이 되었다. 조금 있으면 또 한 살 더 먹으려나, 한 살 더 먹으면 전자렌지를 쓸 수 있을까, 언제 쯤 혼자서 밥을 차려 먹을 정도로 자랄까 싶다가도 아기때에 분유, 이유식, 유아식을 다 따로 만들어 주던 것들을 생각하면 이쯤 되면 살만 해졌다 싶기도 하다.


매일 매일 아이들 밥상을 차려놓고 나가려다 보니 반찬이 오히려 풍성해진다. 매일 한 개씩은 새 반찬을 만드는 편이고, 계란밥이나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나도, 아이들도 너무 아쉬운 부분. 하지만 이것도 한 때려니 한다. 금방 이 시절이 지나고 요즘의 일들을 과거의 일로 회상할수 있어지겠지.


너희, 계란밥, 컵라면 못 먹어서 아쉬워? 엄마는 더 아쉬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감자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