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둔 지 오래되면 날짜 개념이 없어질 것도 같은데 불금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몸이 있어 시간 가는 건 알고 지내고 있다. 식비를 줄여보자며 배달음식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데 불금을 기억하는 몸뚱이는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치킨에 맥주를 찾아 아우성이다.
수요일부터 찾아온 감기 때문에 맥주는 마시자고 하면 남편이 화낼 것 같고 치킨을 먹자고 귀속말을 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안돼"라고 귀속말로 답한다. 하긴 이번 주에 벌써 치킨을 먹어 안될 줄 알았지만 혹시나 해서 찔러본 거였으니 안 먹는 거에 대한 불만은 없는데 그래도 남들이 즐기는 불금에 '특식'정도는 먹고 싶어 추파를 던진다.
남편은 알아들었다는 듯 식량이 있는 펜트리에 들어가 사부작 거린다. 매운 라면을 잘게 부셔 생으로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걸 즐기는 내 취향을 귀신같이 알고 불금 특식을 준비하며 "일 인 일 봉"을 외친다.
방에 들어가 코미디 영화를 틀고 맥주는 못 마시니 유자청을 섞은 탄산수를 들고 와 시원하게 들이키며 생라면을 요란하게 씹는다. 딱히 스트레스받은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몸속까지 뻥 뚫리는 기분. 역시 몸이 기억하는 "불금 밤". (스트레스도 몸이 기억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