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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Jun 04. 2021

일기콘 17일차 <왜 목요일마다 비가 올까요.>

일주일에 단 하루  '디카시'핑계로 잠시나마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날이 돌아왔다. 그런데 어김없이 가 내린다. 설상가상 요란한 빗소리에도 늦잠을 자버렸다. 감기가 올 것 같아 감기약을 먹고 잔 게 화근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왜 깨우지 않았냐"라고 남편에게 툴툴댄다. 양쪽 코가 막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따지는 내게 남편은 "지금 출발해도 늦으니 가지 마"란다.


하긴,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렸는데 비 오는 날 밖으로  보내는 것도 싫을만하다 싶어 잠잠코 소파에 앉아있으니 따듯한 유자차를 건넨다. 남편은 내가 "툴툴대는 게 아직도 귀엽다."며 웃는다. 도대체 그 눈에 씐 콩깍지는 언제쯤 벗겨질 건가 싶어 어이가 없어 흘겨본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12년 전. 그때도 비가 왔다. 내가 지금보다 25킬로쯤 적게 나갈 때였으니 그때만 해도 귀여웠지. 암, 그렇고 말고... ' 남편은 아직도 그때의 내가 나이도 먹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내 옆에 다가와  "단발로 자를래?"라고 묻는다.

"그럼 더 귀여울 텐데."라면서 긴 머리카락을 단발 길이쯤에 맞춰 들어보더니  "어,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거 같네" 라며 의아해한다.

"오빠, 단발이 어려 보이는 나이는 이제 아니지..."


'벌써 서른다섯이다. 적은 나이 인가 싶으면서도 '많이도 먹었다.' 싶은 나이 어딜  가면 "언니"라고 불리는 게 더 자연스러운 나이다. 중학교 때부터 서른두 살이 꿈이었다. 무엇이든 이루어졌을 것 같은 나이. TV에서나 보던 커리어우먼이 된 당당한 모습. 돈 걱정 없이 매일을 보낼 수 있는 이상적인 나이. 그런 꿈의 나이를 지나고 보니 열두 살이나  스물두 살이나 서른두 살이나 똑같더라. 어려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번다고 돈 걱정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어릴 땐 기회라도 있었지...'괜히 앉아 한숨을 쉰다.


남편은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미세먼지 없는 날은 비 오는 날 밖에 없다면서 "오빠, 우리 인생에 미세먼지 없는 날은 언제나 오려나" 괜히 우울한 척 묻는다. "난 요즘 매일 붙어 지내서 항상 맑은데." 열두 살과 스물두 살엔 없었고 지금은 있는 것이 하나는 있구나. '나를 영원히 사랑해줄 타인 그리고 내가 영원히 사랑할 타인.'


목요일엔 비가 오고 그래서 미세먼지가 없습니다. 우리 집은 목요일마다 환기를 합니다. 우리 집엔 항상 맑은 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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