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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Jun 04. 2021

일기콘 16일차 <택배를 찾으러 갑니다.>

살림 10년 차에 접어든 프로 살림꾼 남편도 가끔 실수를 한다. 요즘 잦은 실수가 택배 배송지를 잘못 표기하는 실수인데 통영 100일 살이를 할 때는 경기도 집으로 택배를 잘못 보내 낭패를 봤다. 그것도 신선식품을 빈집으로 보내 놓은 바람에 이웃에게 나눔을 한적도 있는데 이번엔 10년 전 신혼을 보냈던 아파트로 물건을 잘못 보냈다. 가까운 거리라 가지러 가자며 집을 나서는데 본인이 잘못해놓고선 괜히 툴툴거린다.


"혹시 모르니 택배사에 반품 접수된 거 없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묻는데 "그걸 어떻게 확인하냐"라고 정색부터 한다. 냉한 기운이 감도는 차를 타고 신혼을 보냈던 아파트를 찾는데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은 기분이다. 서해바다를 끼고 있는 옛 아파트에 들어서자 꿉꿉한 내음이 코로 들이찬다.


10년 전, 14평 복도식 아파트 전세 4500만 원짜리 그게 우리 둘의 첫 집이었다. 그때도 오래됐던 아파트 복도에선 꿉꿉하다 못해 침침한 냄새가 풍겼다. '최대한 돈을 아끼자.'는 마음으로 계약하고 들어간 집은 복도에서 느껴지던 이미지를 그대로 붙여 넣기 라도 한 것 같았다. 여기저기 박힌 못,  도배지에 새겨진 누구의 것인지 모를 지문들... 박힌 못을 빼고 셀프로 도배를 하며 '여기를 거쳐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생각했고 화장실 가득 핀 검은곰팡이에 락스를 부으며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가게 될까?'생각했던 그때. 신혼을 보냈던 집이라 그런지 2년의 계약이 끝나고 떠나올 때는 씁쓸했다. 내 손으로 치장한 '집'을 떠난다는 건 남의 집이고 내 집이고 관계없이 그냥 '집이 가지는 의미'그 자체로 조금은 버겁다.


마지막으로 떠나고 8년 뒤 다시 찾은 집. 복도에서 이제 내 집이 아닌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우물우물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예전에 살던 사람인데요. 택배를 여기로 잘못 시켰어요."

젊은 여자가 문을 연다. 소박한 밥상이 현관에서도 보일만큼 가깝다. 우물울 하던 목소리는 저녁밥을 먹으며 말하던 소리겠지. 냉동실에서 남편이 잘못 보낸 신선식품을 꺼내 준다.

"찾으러 올 것 같아서 냉동실에 넣어 놨어요."

여자의 목소리가 작은집에서 복도로 나와 또랑또랑하게 울린다. 그때의 내가 거기 서 있는 것 같다. 아직 젊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그리고 생글생글했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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