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가나나 Jun 04. 2021

일기콘 15일차<중년이라 아픕니다.>

남편과 산책을 하다 벤치에 앉아 쉬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안 아픈 데가 없네 란다. '중년의 증후군'인가 라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낸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죽는 증후군 '라고 하지 않았냐고 하면서 말이다. 어이가 없어 "뭐라고?" 물었더니 됐다며 벤치에서 일어나 걸어간다. 단단히 삐졌다. 어이가 없고 웃음이 났다. 남편을 쫓아가 "중년"이라고 했다니깐  남편은 "발음을 이상하게 한 자기 탓" 이라며 또 화를 낸다.


일호가 될 수 없어에서 건강 검진하러 간 팽락 부부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청력검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최양락 옆에서 팽현숙이 귀에다 대고 "들려, 내 목소리 들리냐고" 하던 장면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한참 웃고 옆에 있는 남편 귀에 대고 몇 번이고 장난쳤는데 오늘 남편을 보니 장난만 칠 때가 아니구나 다.


중년을 죽음이라고 알아듣고 화를 낼 만한 나이가 돼버리건가 싶어 걸어가는 남편 옆에 딱 붙어서 괜스레 장난을 건다. 남편도 갑자기 버럭 한 게 미안한지 내 손을 꼭 잡는다. 푸릇한 20대에 만나 노릿하게 익어가는 40대, 벼로 치며 6~7월 맞이한 남편은 요즘 자기 나이가 실감 난다고 한다. '정신은 아직 20대인데 몸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게 느껴진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남편의 말에 조금 서글퍼진다. 인간에게  '나이'란 어떤 의미 일까 유한한 생명력이 끝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 같은 걸까.


천하의 진시왕도 영원한 젊음과 영생을 누리기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매었지만 50이란 나이에 단명하고 만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먹었던 한약재에 포함된 '수은 중독'이 그 이유였다. 죽음 이후에도 영생을 그리며 진시왕릉을 만들었으니 그의 불멸의 삶을 향한 염원은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 천하를 호명하던 절대 권력자도 '나이'라는 유한한 생명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인간'이었던걸 생각하면 이제 건강의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될 중년을 맞이한 남편이 '건강 걱정'이 깊어지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이가 많지 않아서인지 삶에 대한 욕망이 그리 깊지도 않다. 어쩌면 나이와는 별개로 천하를 호명할 권력이 없기에 그저 개미 같은 목숨을 길지 않게만 살아내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생명의 유한함을 생각하면 홀로 남겨지게 될 나 또는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럼, 단지 그것만으로도 버겁고 쓸쓸해진다. 나와 남편이 함께 하는 행복한 세월이 흘러가면서 육체도 조금씩 소멸의 길로 들어선다. 그렇게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게 돼버리는 걸까. 조금 쓸쓸한 바람이 부는 쓸쓸한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일기콘 14일차 <헌책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