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에 대한 예찬
최근 가수 뉴진스의 뮤직비디오에서 ‘그 시절 감성’으로 불리는 Y2K 감성이 유행을 하며 캠코더, 필름 카메라, 과거 영광을 누렸던 올림푸스 등의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기사를 봤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창신동 벼룩시장에서 옛 카메라를 구매하며 그 시절 감성을 재현하는 장면도 나오는 걸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점점 카메라는 사람의 눈과 비슷해져 갔다. 보다 높은 화소, 해상도, 색상 표현력을 앞세운 카메라들이 잇따라 출시하고 어느덧 DSLR 시대도 저물어 현재는 미러리스 카메라가 대세가 되었다. 내게도 크롭 바디와 풀프레임 바디의 소니 카메라 두 대가 있다. 작년 이 맘 때 즈음, 카메라 기종을 변경할 때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후지필름사의 x100v 모델은 당시 품귀현상을 빚어내고 있었다. 해당 모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건 바라만 봐도 아름다운 클래식한 디자인도 한몫했지만 ‘필름 시뮬레이션 모드’가 컸다. 필름 시뮬레이션 모드는 쉽게 말해 색감을 사전 설정해 마치 필름 카메라로 찍은 듯한 색감의 사진 결과를 보여주는 후지필름사만의 독보적인 기능이다. 당시 중고 매물가가 출고가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내해기도 했다. 결국 새 제품을 구하지 못해 결국 구매를 포기하고 소니사의 풀프레임 카메라를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부유하지 않았던 환경이었지만 사진을 좋아했던 엄마에게는 오래된 캐논 필름 카메라가 있었다. 세월이 오래 흘러 모델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색상의 선명도가 꽤 좋았던, 그 당시 아주 나쁘지는 않았던 카메라였다. 20대 중반 독립을 해 집에서부터 나와 살면서 본가에서 챙겨 오지 않은 물건 중에 가장 아쉬웠던 물건이 바로 그 캐논의 필름 카메라였다. 지금은 디지털화되어 필름을 현상하지 않아도 촬영본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고화소의 디지털카메라가 필름 카메라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따금씩 필름 카메라만이 주는 저감도의 날 것 그대로의 색감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최근 태국 치앙마이로 여행을 가게 되어 온라인 면세점에서 미리 상품을 주문하기 위해 면세점 사이트에 들어가 상품을 고르던 중 코닥사의 필름 토이 카메라를 보게 되었다. 발견한 순간 앙증맞은 디자인에 반했고, 필름 카메라에 대한 갈증을 소소하게나마 풀 수 있을 것 같아 필름과 함께 주문을 했다. 인도장에서 면세품을 받고 비행을 마친 뒤 호텔에서 꺼내 본 필름 카메라는 너무도 귀여웠다. 모델명마저 RETRO인 H35를 만난 첫 순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카메라를 따로 챙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럿이 함께 가는 여행이다 보니 사진보다는 일정에 맞춰 일행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다 보니 사진 촬영에 시간을 많이 쓸 수 없어 가볍게 필름 카메라와 아이폰 카메라로만 잠깐씩 촬영을 했다. 망원을 좋아하는 내게 22mm 화각과 낮은 조리개값은 성에 차지는 않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카메라로 기록을 남기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링을 돌리는 시간이 설렌다. 필름을 넘기기 위해 빙글빙글 링을 돌리다 세팅이 완료되어 탁 걸리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찰칵’도 아닌 ‘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촬영이 끝난다. 결과물은 바로 확인할 수 없다. 결과물을 확인하기까지 어떻게 담겼을까 현상소에 맡기고 확인하기 직전까지 궁금해하는 그 시간이 너무도 설렌다. 줌 카메라가 아니어서 소위 말하는 ‘발줌’을 하며 최대한 원하는 앵글을 맞추고, 링을 돌리고, ‘탈칵’ 셔터를 누르기를 반복해 본다. 혹여나 빛이 새어 들어갈까 뒤판은 열어보지 않는다. 총 72장은 나의 어떤 시선이 담기고, 어떤 추억이 담아져 있을지 너무도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집 근처에는 현상을 맡길 곳이 없어 회사 근처 오래된 사진관으로 향했다. 요즘은 필름 스캔도 가능해 필름 스캔과 현상을 같이 요청했다. H35는 플래시 기능이 있지만 건전지를 넣어야 플래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데, 미리 건전지를 준비하지 못해 저조도 환경에서 사진이 아예 검게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현상된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현상된 사진의 노이즈가 잔뜩 낀 예스러운 느낌이 태국 치앙마이와 아주 많이 닮아있었다. 진득한 색감과 풍겨오는 과거의 향기와 향수는 미래의 내가 이날을 기억할 때 보다 풍부하게 기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진이라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선물을 주는 행위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72번의 셔터를 누르는 동안 미래의 나에게 줄 선물을 72회 이상 골랐다. 한 장, 한 장의 추억이 모여 추억은 영상화되고 그 추억을 일상의 양분으로 삼고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사진 72장의 무게는 가볍지만 추억은 결코 가볍지 않으리.